심성정을 논함(論心性情)

 

이 글은 율곡이 송한필(宋翰弼)에게 기질지성(氣質之性)이 인성(人性)중에 따로 하나의 별개적인 성(性)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을 비롯해, 사단 칠정(四端七情)이 모두 정(情)에 내포되는 것임을 간결하게 논한 것이다. 그리고 끝에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天命圖)」에 대한 평이 붙어 있다.

 

나는 계응(季鷹)89)에게 말하였다. "대저 기질지성(氣質之性)은 별개의 성이 아니다. 기질이 성(性)을 싸고 생명과 함께 나기 때문에 성이라 이른다. 기질은 그릇[器]과 같고 성은 물[水]과 같다. 깨끗한 그릇에 물이 담긴 것은 성인(聖人)이요, 그릇 속에 모래와 진흙이 담긴 것은 중인(中人)이요, 전연 진흙 속에 물이 담긴 것은 하등인(下等人)이다. 금수같은 것도 비록 막히기는 하였으나 물이 없지는 않다."

비유컨대, 물을 섞은 진흙덩이와 같아서 끝내 맑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개 습성(濕性)이 이미 말라버려 맑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또 물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물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성인은 정(情)이 중절(中節)90)하지 않음이 없으며, 군자는 정은 혹 중절하지 못하나 의(意)는 중절하지 않음이 없고, 상인(常人)은 혹은 정은 중절하나 의는 중절하지 못하기도 하고, 혹은 정은 중절하지 못하나 의는 중절하기도 한다. 만약 정을 선하지 않음이 없는 것으로 여겨 정에 내맡겨서 행한다면 어찌 일이 실패하지 않겠는가?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정(情)은 성(性)의 용(用)이요, 성(性)은 정(情)의 체(體)이며, 심(心)은 성정(性情)의 주(主)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 말도 또한 기질을 포함하여 말한 것으로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심성정도내가 강릉에 있을 때, 기 명언(奇明彦)91)이 퇴계와 더불어 사단 칠정을 논한 편지를 보았다. 퇴계는 사단(四端)은 이(理)에서 발하고 칠정(七情)은 기(氣)에서 발한다'고 하였고, 명언은 '사단 칠정은 원래 두 개의 정(情)이 아니고 칠정 중의 이(理)에서 발한 것이 사단이다'라 하여 왕복한 편지가 만여 언인데 마침내 서로 맞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명언(明彦)의 논리가 바로 나의 의견과 일치한다. 대개 성(性)에는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 있고 정(情)에는 희(喜)·노(怒)·애(哀)·락(樂)·애(愛)·오(惡)·욕(欲)이 있으니, 이와 같을 따름으로 오상(五常 = 仁義禮智信)밖에 따로 성이 없고 칠정 이외에 다른 정이 없다. 칠정 가운데서 인욕이 섞이지 않고 순수하게 천리(天理)에서 나온 것이 바로 사단인 것이다.92)

을축년(명종 20 1565) 봄 원일(元日)에 내가 강릉 부사(江陵府使) 김문길(金文吉:添慶)93)과 대화하던 중 측은(惻隱)의 정에 대하여 언급하게 되었다.

김 문길이 "사단은 중절(中節: 절도에 맞는 것)로 지목할 수 없다"고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사단은 바로 이발(已發: 정이 이미 발한 것.)이니 중절로 지목할 수 있다. 대저 <정이> 이미 발하면 곧 중절했느냐 못했느냐 하는 분별이 있는데, 어찌 중절도 아니요 중절하지 않은 것도 아닌 정이 있겠는가?" 하였다.

문길이 "도적이 사형 당하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면 이것도 중절이라 이를 수 있겠는가?" 하기에, 나는 "도적의 죄는 그 죄대로 미워하면서도 장차 죽게 되는 것을 보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천지가 만물을 생성시키는 마음이니 어찌 중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우(禹)임금이 수레에서 내려 죄인을 보고 측은하여 운 것94)이 이런 것이다."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정 추만(鄭秋巒)95)의 천명도(天命圖)96)에 사단을 아래에 그리고 의(意)자를 위에 그렸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근사 역행(近思力行)97)을 급무(急務)로 삼아야지 천명에 대해서 갑자기 말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 주 >

89) 송한필(宋翰弼)의 자(字)·호는 운곡(雲谷)이라 한다. 사련(祀連)의 아들이며, 익필(翼弼)의 아우이다. 율곡은 일찌기 말하기를 "가히 더불어 궁리(窮理)의 학을 논할만 한 이는 오직 송익필 형제 뿐이다." [栗谷曰, 可與語窮理之學者, 惟宋雲長兄弟而已]하였다. 《朝鮮人物號譜》

90) 도덕 규범에 꼭 들어맞는다는 뜻인데, 이것은 「중용(中庸」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하고, 발현되어 절(節)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91) 1527(중종 22)∼1572(선조 5). 기 대승(奇大升)의 자(字)이다. 호는 고봉(高峯). 퇴계와 근 8년동안 사단 칠정(四端七情)에 대한 논쟁의 왕복 서한이 있으며 이조 성리학에 이름이 높은 학자이다.

92) 이 글은 율곡(栗谷)의 성정론(性情論)과 이기설(理氣說)의 중요한 일면이다. 오상(五常)외에 다른 성이 없고 칠정(七情) 외에 따로 정이 없으며, 사단(四端)도 칠정속에 내포된 것으로 다만 천리(天理)에서 나온 순수한 것이라고 보았다.

93) 1525(중종 20)∼1583(선조 16). 자는 문길(文吉), 호는 동강(東岡), 벼슬은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숙간(肅簡).

94) 하(夏)의 우왕은 죄인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울었다. 왜내하면 성인이 정사를 하였으면 죄인이 생겼을 까닭이 없었을 터인데 하는 생각에서이다. 즉, 백성을 교화하는 덕이 부족한 것에 대해 스스로 아파했고, 그러므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죄인을 더욱 불쌍하게 여겨서 운 것이다. 《說苑 君道》

95) 이름은 지운(之雲). 자는 정이(靜而)·추만은 호. 퇴계의 문인. 천명도를 만들어 퇴계에게 보였고, 퇴계는 이를 정정해 주었으며, 천명도는 뒤에 사칠 논쟁의 발단이 되기도 하였다.

96) 태극·이기·음앙 오행·심성정의 체용 동정을 나타낸 도식. 특히 사단 칠정·이기 호발설을 도출해 낸 도설로서 태극도(太極圖)·중용(中庸)·주자의 이기설(理氣說)을 요약하여 그렸다고 함.

97) 근사(近思)는 가까이 자기 몸에 두고 생각하여 먼 데까지 미루어 나가는 것이요, 역행(力行)은 힘써 실천하는 것이다. 「중용(中庸)」의 학·문·사·변·행(學·文·思·辨·行)이 바로 근사역행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