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대한 책문(誠策)

 

이것은 율곡이 21세에 한성시(漢城試)에서 장원한 글로 성(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고 있다.

문(問)

성(誠)은 그 용(用)이 크다. 그윽하게 천지를 감격케 하고 귀신도 감동케 하며, 밝게는 인심이 모두 복종하게 하는 효과를 이룩한다.

선유중에 어떤 이는 무망(無妄)26)이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불기(不期)27)라고 하였는데, 이 두 가지 말이 서로 차이가 있는 것인가?

힘을 써서 공부를 하는 묘(妙)가 무엇에 근본을 두었기에 그런 성대한 효과가 있는 것인가?

성인은 성을 편안히 행한다는데, 과연 힘을 쓰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바람을 되돌려 불을 껐다든가,28) 대밭에서 울자 죽순이 났다든가,29) 창을 휘둘러 해를 돌렸다든가,30) 얼음을 두들기자 고기가 뛰어왔다든가31)하는 등의 일은 참으로 천지를 감격케 하고 귀신을 감동시킨 하나의 증험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과연 성명(誠明)의 성(誠)과 위육(位育)33)의 성과가 묘함이 같은 수 있겠는가?

촉군(蜀郡)이 문옹(文翁)34)에게 감화한 것이나, 영읍(穎邑)이 황패(黃覇)35)에게 감복한 것이나 어양(漁陽)이 장감(張堪)36)을 좋아한 것이나 조주(潮州)가 창려(昌黎)37)를 사모한 것은 참으로 인심을 감복시킨 하나의 증험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시경] 대아(大雅:문왕유성(文王有聲))에 이른 바, "서쪽이나 동쪽에 불복(不服)하려는 사람이 없다."한 효험과 다름이 없는 것인가?

이 성의가 있으면 이 효험이 있는 것은 필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삼인(三仁)38)은 상(商)에서, 공명(孔明)39)은 한(漢)에서, 악비(岳飛)40)와 문천상(文天祥)은 송(宋)에서 그 성(誠)이 하늘을 돌릴 만했는데도 하늘이 응하지 않았고, 사람을 감복시킬 만했는데도 사람이 감화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떻게 하면 순수(純粹)하고 간단이 없어 지성스럽고 깊고도 은미한 극에 달할 있겠는가?

제생은 평소에 반드시 섭렵한 공력이 있을 것이니 연구했던 설을 들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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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

26)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 「중용(中庸)」제20장에 "성(誠)은 하늘의 도이다."한주에 "성은 진실하여 거짓이 없음을 말함이니 천리(天理)의 자연이다." 하였다.

27)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대학(大學)」성의장(誠意章)에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것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하였다.

28) 후한(後漢)때 유곤(劉昆)이 강릉령(江陵令)으로 있을 적에 해마다 강릉에 화재(火災)가 발생하므로, 유곤이 그 불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정성껏 기도하니 비가 내리고 바람이 그쳐 불이 저절로 꺼졌던 고사이다. 《後漢書 儒林傳》

29) 삼국(三國)시대 오(吳) 나라의 효자(孝子)였던 맹종(孟宗)은 자기 어머니가 죽순(竹筍)을 좋아하므로, 죽순이 날 수 없는 동절(冬節)임에도 불구하고 대숲에 들어가 슬피 울자 죽순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를 가져다 어머니를 봉양했다는 고사이다. 《三國志 券四十八》

30) 전국(戰國)시대 노양공(魯陽公)이 한(韓)과 싸워 전쟁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날이 저물어지자 창을 들고서 태양을 겨냥하여 휘두르니, 태양이 삼사(三舍:90리 정도)쯤 후퇴했다는 고사이다. 《淮南子 覽冥訓》

31) 서진(西晋) 때 왕상(王祥)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그의 어머니가 생선을 먹고 싶어하자 마침 추운 꽁꽁 얼어붙은 강에 나가 고기를 잡기 위해 옷을 벗고 들어가 얼음을 깨려고 하니, 갑자기 얼음이 저절로 깨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튀어나오므로 이를 가져와 어머니를 봉양했다는 고사이다. 《晉書 卷三十三》

32) 「중용」 제21장에 "성(誠)으로 말미암아 밝아진 것을 성(性)이라 한다 [自誠明謂之性]'한데서 온 말인데 그 주에 "덕(德)이 성실하지 않음이 없고 밝음이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은 곧 성인(聖人)의 덕이 성(性)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니, 이것은 천도(天道)이다." 하였다.

33) 위육(位育)은 「중용」 제1장에 "중(中)과 화(和)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에 안정되고 만물이 육성된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한 데서 온 말이다. 이것은 곧 사람이, 남들이 보고 듣지 않은 데서도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조금도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중도를 극도로 지키면 천지가 제자리에 안정되고, 혼자 있을 때에도 언제나 삼가고 모든 대해서도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하여 화(和)를 극도로 이루면 만물이 육성된다는 성대한 공효를 말한 것인데, 대개 천지 만물은 내 한 몸에 근본 되므로 내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 또한 바르게 되고, 내 기(氣)가 바르면 천지의 기 또한 바르게 됨을 의미한 것으로. 이것은 성인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34) 문옹(文翁)은 한(漢)나라 때 여강(廬江)사람으로 본디 학문을 좋아하고 인애(仁愛)로써 백성 교화하기를 좋아하였다. 한 경제(漢景帝) 때 그는 촉군태수(蜀郡太守)가 되어 촉군에 비루한 오랑캐의 풍속이 있음을 보고는 그 고을 사람 중에 재주 있는 자들을 뽑아 서울에 보내어 가르쳐서 모두 성최하게 하였고, 또 촉군 성도(成都)에 학교를 설립하여 그곳 자제들을 가르쳐서 그곳을 매우 문명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문 옹이 뒤에 촉군에서 죽자, 촉군의 이민(吏民)들은 그를 위해 사당을 건립하여 제사하였다. 촉군 지역이 문아(文雅)를 숭상하게 된 것은 모두 문 옹의 교화에 힘입은 것이라 한다. 《漢書 循吏傳》

35) 황패(黃覇)는 한(漢)나라 때 회양(淮陽) 사람으로 그는 특히 여러 지방을 잘 다스려 치적(治績)이 당시 천하제일로 손꼽혔다. 그가 한 선제(漢宣帝) 때 영천태수(穎川太守)가 되어서는 영천을 잘 다스렸던 관계로 봉황새 같은 서조(瑞鳥)가 자주 그 군에 날아들곤 하였다 한다. 《漢書 循吏傳》

36) 장감(張堪)은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일찍이 촉군태수(蜀郡太守)가 되어 선정(善政)을 많이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고, 그가 어양태수(漁陽太守)가 되어서는 농지를 확장하여 백성들에게 농사를 많이 짓도록 해서 잘살게 하니, 어양 사람들이 맥수가(麥穗歌)를 지어 "뽕나무는 붙은 가지가 없고 보리 이삭은 두 갈래로 자라네, 장군이 선정을 하니 즐거움을 감당치 못하겠네.[桑無附枝 麥穗兩岐 張君爲政 樂不可支]"라고 노래 부르며 그를 칭송했다. 보리 이삭이 두 갈래가 되는 것은 풍년의 조짐이라 한다. 《後漢書 卷三十一》

37) 창려(昌黎)는 창려백(昌黎伯)에 추봉(追封) 된 당(唐)나라 한유(韓愈)를 가리킴. 한유는 당 헌종(唐憲宗)때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있으면서 제악어문(祭魚文)을 지어 그곳 백성들에게 큰 해를 끼치던 악어를 물리쳤고, 또 학교를 설립하여 그곳 백성들을 가르치는 등 매우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백성들이 사당을 지어 제사하며 그를 앙모(仰慕)하였다. 《唐書 卷一白七十六》

 

(이 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