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과 귀신에 대한 책문(死生鬼神策)

 

이 글은 율곡의 죽음과 삶, 귀신에 대한 의견을 진술한 내용이다.

문(問)

죽음과 삶,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위로 날아가고 넋은 아래로 흩어져 버려 본래 남는 기(氣)가 없는 것인데, 공자의 이른바 "훈호 처창(焄蒿悽愴)"34)이란 것은 어떤 물체를 가리켜 말한 것인가?

죽은 뒤에 만약 지각이 있다면 불가의 인과응보(因果應報)35)의 설이 허황된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 만약 지각이 없다고 한다면 돌아가신 조상의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반경(盤庚)이 도읍을 옮길 적에 고후(高后: 始祖)가 화(禍) · 복(福)을 내려 주신다는 것으로써 그 백성들에게 고유하였으니, 그렇다면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어 가지고 과연 능히 화도 주고 복도 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인가?

주공(周公)이 삼왕(三王: 선대의 세 임금)에게36) 고유하기를, "나는 재예(才藝)가 많아서 능히 귀신을 섬길 수 있다." 하였으니, 주공이 말한 소위 귀신이란 어떤 귀신을 가리키는 것인가?

사람이 죽은 뒤에 과연 능히 그 귀신을 섬기는 이치가 있는 것인가?

백유(伯有)37)가 악귀(惡鬼)가 되자 자산(子産)38)이 그를 위해 사당〔廟〕을 세워 주었고, 무서운 악귀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진 경공(晉景公)39)이 횡사하였으니, 이것도 또한 이치의 필연적인 것인가?

원성(元城)40)이 임종할 무렵 바람과 우뢰가 정침(正寢)에서 요란하게 울렸고 구름과 안개가 끼어 천지가 컴컴하게 어두웠다 하니, 이것은 무슨 기인가?

불교의 도를 많이 닦는 승려가 죽을 때는 반드시 괴상한 변화가 있는데 이것은 또 무슨 이치인가?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모두 이치가 있다."고 하였다. 하물며 죽음과 삶의 문제는 중대한 것이다. 어찌 그 이치가 없을 리 있겠는가?

여러 군자들에게 궁리·격물의 설을 듣기를 바라는 바이다.

답(答)☜ 클릭하세요

 

< 주 >

34)「예기(禮記)」제의(祭義)편에 보인다.

35) 사람이 짓는 선악(善惡)의 인업(因業)에 응하여 과보(果報)가 있다는 말이다.

36) 이상의 내용은 「서경」반경(盤庚)편과 금등(金 )편에 보인다. 고후(高后)는 탕(湯)임금.삼왕(三王)은 태왕(太王)·왕계(王季)·문왕(文王)을 가리킨다.

37) 춘추시대 정(鄭)나라 대부(大夫) 양소(良宵)의 자(字). 양소는 성질이 고약하고 욕심이 많았으며 죽어서 여귀( 鬼)과 되어 정나라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한다.

38) 역시 정나라 사람인 공손교(公孫僑). 그는 동리(東里)에 우거하였으므로 또한 동리 자산(東里子産)이라고도 칭하는데, 박식하고 정치하는 데도 관용과 위엄이 겸비하였으며, 그의 죽음에 공자도 슬피 울었을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39) 춘추시대 진(晋)나라 경공(景公). 그의 시호가 경(景)임. 그는 조최(趙衰)·조순(趙盾)이후 대대로 진나라에 공을 세워온 것을 무시하고 그들 후손인 대부(大夫) 조동(趙同)·조괄(趙括)을 죽이는 동시에 그 일족을 몰살 시켰더니, 꿈에 여귀가 침문(寢門)에 들어와서 "나의 후손을 죽였으니 옳지 못하다."하였는데, 그 여귀는 바로 조씨의 선조였으며, 진경공은 그 길로 병이 나서 죽었던 것이다. 《左傳成公 八年·十年》

40) 송(宋)나라의 유안세(劉安世)를 가리킴. 자는 기지(器之).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있으면서 언론이 강직하였으므로 당시 그를 전상호(殿上虎)라고까지 지목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었다. 《宋史 三百四十五. 宋元學案二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