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 향약(西原鄕約)

 

이 향약은 율곡이 36세 때인 1571년(선조 4) 청주목사(淸州牧使)로 부임했을 때 이 고을의 교화(敎化)를 위하여 만든 것으로, 서원은 청주(淸州)의 옛이름이다. 율곡은 이 고을 군수로 있던 이 증영(李增榮) · 이 인(李인) 등이 만든 기존의 향약을 토대로 하여 송 나라 여씨형제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참고, 절충하여 이 향약을 만들었다.

이것은 「여씨향약」이나 「주자증손여씨향약」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향촌실정에 맞는 향약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행한 것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입의(立議)

향약(鄕約)은 옛날 한마을에 사는 사람이 공동으로 마을을 지키고, 질병이 났을 때 서로 도우며, 출입할 때의 경비를 서로 돕고,1) 또 자녀들로 하여금 학교교육을 받아 윤리도덕을 돈독하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하(夏), 은(殷), 주(周) 삼대(三代)의 사회가 훌륭했고 풍속이 아름다웠던 까닭이 진실로 이것 때문이다.

세상이 타락하고 진리가 실행되지 않으며 정치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이 흩어지며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풍속이 어그러졌으니 아아! 슬프다.

나는 시원찮은 선비로서 큰 고을의 수령이 되었으니 정무를 보는 데도 한가하지 않을뿐더러 병이 또한 많으나 오직 백성을 교화시키고 풍속을 진작시키려는 뜻만은 간절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고을의 원로들과 그 방법을 논의하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향약을 다시 시행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이 고을에서는 이증영(李增榮)이 처음으로 향약을 만들었고 그 후 이공(李公) 인( )이 수정하였으니 그 규모를 알 수 있지만 이공이 조정으로 돌아가고 고을 사람들의 뜻이 꺾여 마침내 문구만 남아있게 되었다.

내가 두 군수의 발자취를 계승하여 그들이 만든 것을 기본으로 하고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참고하여 번거로운 것은 줄이고 엉성한 것은 보충하여 다시 조약을 만들었다.

비록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권선징악하는 방법에 크게 잘못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고을원(邑主)이 몸소 행하는 실상이 없으면 계장(契長)에게 명할 수 없을 것이고, 계장이 정직한 선비가 아니면 고을 사람들을 규찰할 수 없을 것이니, 고을 사람들이 선에 나아가고 악을 버리는 것은 계장에 달려 있고, 계장이 보고서 감화케 하거나 격려하는 것은 읍주에게 달려 있다.

나는 당연히 착한 말을 널리 구하고 스스로 힘써서 게을리하지 않아야 되지만, 계장 · 유사(有司)도 마땅히 나의 뜻을 법받아 먼저 스스로를 수칙(修飭)하여 고을 사람들을 흥기시켜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고을 사람들이 만약 밉게 보는 뜻이2) 없어 웃사람의 감화가 마치 바람에 풀 쓰러지듯 한다면 서원(西原)의 향약은 크게 변할 것이다.

아 ! 힘써 경계할지어다.

융경(融慶) 5년(1570) 늦가을에 인재(齋)에서 쓰다.

 

무릇 선행 · 악행은 모두 규약을 세운 뒤에 상벌을 시행하고, 규약을 세우기 전에는 비록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논죄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고치도록 여유를 주었다가 규약이 세워진 후에도 이전처럼 고치지 않은 뒤에야 벌을 논한다.

이상은 계장 유사 등에게 보인 것이다.

조 목(條目)

도계장(都契長) 4명을 둔다.

장내(掌內) 마다 각각 계장 1명씩을 둔다. (청주(淸州)는 25장내(掌內)이다)

동몽훈회(童蒙訓誨) 1명.

색장(色掌) 1명 (색장과 별검(別檢)은 양천(良賤)3)을 막론하고 성실하여 착한 일을 하려는데 뜻을 둔 자로 가려서 삼는다)

리(里)마다 각각 별검(別檢)을 둔다.

1.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의 내용을 정해두고 권선징악의 재료로 삼는다.

이른바 선행(善行)이란 부모에게 효도를 잘하는 것, 형제간에 우애를 잘하는 것, 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내외(內外)가 정돈되는 것), 친구간에 화목하는 것, 이웃 마을과 화평하는 것, 유행(儒行)으로 몸가짐을 잘하는 것, 의(義)로써 자제를 잘 가르치는 것, 염치와 지조를 잘 지키는 것, 은혜를 널리 베푸는 것, 학문을 부지런히 하는 것, 조세를 잘 바치는 것, 규약이나 명령을 준수하는 것, 남과 상대할 때 신의가 있는 것, 남을 선으로 인도하는 것, 남들의 싸움을 말리는 것, 남의 환난을 구제해 주는 것, 남의 원한을 풀어 주는 것, 남의 잘잘못을 가려주는 것 등이고,

이른바 악행(惡行)이란 효도하지 않거나 자애롭지 않거나 우애하지 않거나 공순하지 않는 것, 스승을 공경하지 않는 것, 부부간에 분별이 없는 것, 본 아내를 박대하는 것, 친구간의 신의가 없는 것, 상(喪)을 당하여 슬퍼하지 않는 것, 제사를 공경히 받들지 않는 것, 이단(異端)4)을 숭배하여 믿는 것, 예법을 경멸하는 것, 음사(淫祀)5)를 좋아하는 것, 친족간에 화목하지 않는 것, 이웃 마을간에 화평하지 않는 것, 젊은이가 어른을 깔보는 것, 천한 자가 귀한 이를 깔보는 것, 술에 빠지거나 놀음을 즐기는 것, 소송을 좋아하거나 싸움을 즐기는 것, 강함을 맏고 약한 자를 깔보는 것, 말을 만들어 무고하거나 헐뜯는 것, 조세를 잘 내지 않는 것, 법령을 두러워하지 않는 것, 사사로운 경영이 너무 심한 것, 기생을 끼고 술을 마시는 것, 태만하여 일을 폐지하는 것 따위이다.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이 있으면 유사(司有) · 색장(色掌) · 별검(別檢)은 그것을 사실에 따라 기록한다.

2. 사맹(司猛)6)의 초순에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을 잡아 장내(掌內)의 동약자(同約者)는 모두 모여 강신(講信: 신의를 도모함)7)을 한다.

3. 마을(里)에 상사(喪事)가 있으면 색장이나 별검이 빨리 유사에게 알리고 동약인(同約人)은 각각 쌀 한되와 빈 가마니 한 잎씩 내놓아 부조한다. (혹 빈궁하여 부의(賻儀)를 못하는 자는 몸으로 부역하는 것을 허락한다)

안장(安葬)할 때는 각각 장정 1명 씩을 내놓아 일을 돕되, 사족(士族)은 할 일이 많으면 하루 일한 일꾼을 내놓고 일이 적으면 반나절 일할 일꾼을 내놓으며, 그 나머지 일꾼을 내놓지 않은 자에게는 사람 수에 따라 각각 쌀 한 되씩을 거두어 준다.

4. 무릇 상사(喪事)에 간여하여 모일 때는 술판을 벌이는 일이 없도록 하고 이를 어기는 자는 예법을 경멸한 죄로 다스린다.

5. 무릇 가정에 연고가 있어 부득이 천장(遷葬)하는 자가 있으면 사유를 갖추어 관청에 보고하고 만약 풍수(風水)8)에 유혹되어 아니할 수 있는 데도 마지 못해 한다든가, 기간이 지나도록 천장하지 않는 자는 이단을 숭배하여 믿는 죄로써 논한다.

6. 나이 장성한 처녀가 너무 가난하여 때를 놓쳐 시집 가지 못한 자는 관청에 보고하여 혼수감을 주게 하고 약중(約中)에서도 또한 형편에 알맞게 부조를 한다.

7. 온 가족이 병들어 농사를 못 짓는 경우가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대신 농사를 지어 준다.

8. 나이가 30세 이하인 사람으로, 글도 배우지 아니하고 무예(武藝)도 배우지 아니한 자는 모두「소학(小學)」·「효경(孝經)」·「동자습(童子習)」등의 글을 읽게 하며, 읽지 않은 자는 벌줄 것을 논한다.

9. 백성들 사이에 무릇 송사하는 자가 있으면 모두 계장이나 유사에게 찾아가서 잘 잘못을 판별하도록 하고, 계장이나 유사는 잘못한 자를 깨우쳐주고 타일러서 소송을 그만두게 한다.

계장 유사가 만약 단독으로 할 수 없으면 약중의 사류에 통보하여 회의를 열어(다른 회원으로 모인 자가 3명이 되면 논의가 가능하다.) 이치로 풀어 타일러 주어, 잘 잘못이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잘못한 자가 오히려 중지하지 않으면 비리로써 송사를 좋아하는 죄로 논하며 (무거우면 곧 그 죄를 다스리고 가벼우면 악적(惡籍)에 기록한다) 만약 향중(鄕中)에서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면 관청에 고하여 판결에 따른다.

10. 곤장(笞) 40대 이하의 벌은 계장 · 유사가 스스로 결단하고 이를 넘어서면 관청에 보고한다.

11. 관리나 관노 등이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달라고 요구하여 민폐를 끼치거나 농사를 권장하는 색장(色掌) 등이 촌 사람을 마구 윽박지르는 자는 일일이 적발하여 관청에 보고하여 그 죄를 다스리게 한다.

12. 좀도둑질하는 자를 적발하여 죄를 다스린다.

13. 까닭없이 소를 잡는 자는 죄를 다스리되 만약 부득이한 연고가 있어 잡았으면 사유를 갖추어 계장에게 보고한다.

14. 죄없는 사람이 무고를 당하여 억울하게 형륙(刑戮)을 받게 되면 동약(同約)이 연명하여 관청에 보고하여 해명해 준다.

15. 귀찮아서 향약에 참여하지 않거나 혹은 규약을 어기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자는 관청에 보고하여 죄를 다스린 뒤에 고을에서 쫓아낸다.

16. 죄를 범하여서 당장 다스려야 할 자는, 철마다 첫달의 회합을 기다리지 아니하고서 형편따라 적절하게 벌을 논한다.

17. 무릇 관청에 보고할 일은 만약 철마다 첫달의 회합을 기다리지 아니하고서 형편따라 적절하게 벌을 논한다.

18. 도계장(都契長)은 1년에 한번씩 각면의 계장 유사를 한 곳에 불러모아 약법(約法)을 의논한다.

19. 계장 유사가 만약 공부를 빙자하여 사리(私利)를 챙기거나, 밝지도 못하고 정직하지도 못한 자는 도계장이 관가에 보고하여 논박하여 갈고 색장 · 별검은 각각 장내의 계장 유사가 그 잘못을 규찰하여 심한 자는 이를 간다.

20. 도계장은 만일 관가에 보고할 일이 있으면 어느 때건 서로 통보하여 회합한다.(4명 이내에 2명이 회합에 참석하면 관청에 보고한다)

21. 각 장내(掌內)의 계장이 향소(鄕所)끼리 서로 통보할 때는 관자(關子)9)를 쓰고, 도계장에게 통보하려면 첩정(牒呈)10)을 쓰며, 도계장은 향소와 더불어 문자로 통하지 않는다.

회에서 규약을 읽는 법(鄕會讀約法)

대개 철마다 첫달 초하루에 유사 색장이 회문(回文)을 재어 별검으로 하여금 동약자(同約者)에게 전하여 모두 모이게 하느데, 봄 겨울에는 각각 술과 안주(壺果)를 가지고 오고, 가을과 여름에는 다만 점심만을 싸 가지고 오게 하되, 간소한 쪽을 따르도록 힘써서 혹시라도 폐를 끼치는 일이 없게 한다.

앉는 자리는 계장과 유사는 동쪽 벽에 나머지 회원은 서쪽 벽에 각각 나이에 따라 앉되, 한결같이 평상시에 앉는 차례대로 하여 따로 의론을 내어 분쟁의 꼬투리를 일으킬 수 없게 한다.

서인 이하는 모두 남쪽 줄에 앉되, 서인으로서 직위가 있는 자는 앞줄에 앉으며, 사족(士族)의 서얼(庶孼)도 한줄로 앉는다. 서인으로서 직위가 있는 자는 동쪽에 앉되, 서쪽을 상좌로 하고 사족의 서얼은 서쪽에 앉되 동쪽을 상좌로 하여 양쪽의 우두머리가 서로 마주 앉게 한다.

약중에 향리가 있으면 다음 줄을 만들되 동쪽을 상좌로 하고 서인의 무직자 및 공사천(公私賤)11)은 끝줄을 만들되 서인은 동쪽에 앉아 서쪽을 상좌로 하고 공사천은 서쪽에 앉아 동쪽을 상좌로 하는데 나이 순으로 섞어 앉는다.

색장은 서인으로서 직위가 있는 사람의 줄에다 따로 자리를 만들어 동쪽에 앉고 별검은 향리의 중에다 따로 자리를 만들어 동쪽에 앉되 서쪽을 상좌로 하며, 향리가 없으면 따로 자리를 만들어 동쪽을 상좌로 한다.

만약 서류(庶類)로서 노인 당상관(堂上官)이 있으면 서쪽 벽 뒷줄에다 따로 자리를 만든다.

회의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손을 모으고 용모를 가다듬어 행여 킬킬 웃거나 자세를 흐트리지 않게 하며 좌석이 정돈되면 유사는 큰 소리로 약문 (約文)을 읽어 자리에 있는 사람이 모두 듣게 하고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잘 깨우쳐서 그 뜻을 알게 한다.

색장은 선악적(善惡籍)을 가지고 제위(諸位)에게 두루 보이되 제위 가운데 혹 들은 것이 각각 다르다고 하면 다시 상의하여 하나로 귀결 시킨다.

회람이 끝나면 유사가 일어나서 선행자에게 읍(揖)을 하고 불러내는데, 그 사람이 서인 이하이면 색장이 읍을 하고 불러내어 앞에다 따로 자리를 잡고 뭇사람들이 다같이 추장(推奬)하고 또 권면을 더한다. 그리고 또 악행자를 불러내어 그 악행이 가벼우면 절실하게 책망하여 고치게 하되 고친 뒤에는 적을 지우고, 무거우면 적절하게 벌을 논한다.

이것을 다 마치면 약조의 뜻을 강론하여 서로 규계(規戒)한다. 1년에 한번씩 도계장은 회문(回文)을 내어 각 장내에 계장 유사 색장 별검을 한 곳에 모으는데 앉는 자리는 도계장을 동쪽 벽에, 여러 계장 이하는 서쪽 벽에 각각 나이순으로 앉으며, 색장 별검은 남쪽줄을 만들어 색장은 앞에 앉고 별검은 뒤에 앉는데, 모두 동쪽을 상좌로 한다.

자리가 정돈되면 여러 유사가 각각 선악적을 도계장에게 올려 제위에게 두루 보이고 회람이 끝나면 서로 상의하여 성악이 눈에 띄게 현저하여 관청에 보고할 만한 자나 각 면의 계장 유사로 서 약조를 제대로 지켜서 풍속을 변화시킨 자와 사사로이 서로 폐를 끼친 자는 상세히 관청에 보고한다.

만약 타인의 일을 보고하겠다면 도계장이 그 면의 계장 유사와 함께 서명을 하고, 만약 도계장이 유사의 일을 보고하겠다면 도계장만이 서명을 하며 또한 약조의 뜻을 잘 준행하도록 서로 규계를 한다.

 

< 주 >

1)「맹자(孟子)」등문공(藤文公)상에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일하러 나갈 때나 돌아올때 같이 가고 같이 오며, 도적을 막을 때 서로 돕고, 병이 들었을 때 서로 부축해 준다면 백성들이 친목할 것이다.〔鄕田同井 出入相友 守望相助 疾病相扶持 則百姓親睦〕”고 하였다.

2) 백성들이 웃사람의 교화에 따른 것을 비유한 말.「논어」안 연(顔淵)편에,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에 바람이 일면 반드시 쓸어지게 된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하였다.

3) 양민(良民)과 천민(賤民)을 말한다.

4) 유교(儒敎)와 다른 사상. 곧 노자(奴子) · 장자(壯者) · 양자(楊子) · 묵자(墨子) 등의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일컫는 말이다.《論語 爲政》

5) 제사지내지 않아야 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위를 말한다.《禮記 曲禮下》

6) 사시(四時)의 첫달을 말함. 곧 맹춘(孟春) · 맹하(孟夏) · 맹추(孟秋) · 맹동(孟冬)으로, 음력 1월 · 4월 · 7월 · 10월을 가리킨다.《漢書 天文志》

7) 거짓이 없는 진실한 토론을 말한다.《禮記 禮運》

8) 감여가(堪與家: 지관)를 가리키는 말로, 집터나 묘지를 선정할 때 그 지질과 방위의 길흉(吉凶)을 판단하여 결정하는 술수가(術數家)를 말한다.《漢書 藝文志》

9) 관문(關文)과 같은 것으로 상급 기관에서 하급기관에 시달하는 공문을 가리킨다.《典律通寶 禮典》

10) 하급기관에서 상급 기관에 올리는 공문분으로, 치보(馳報) · 첩보(牒報) · 상고(上考) · 상송(相送) 등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同上 禮典》

11) 공천(公賤)과 사천(私賤)의 약칭으로 공천은 관청의 종을, 사천은 사갓집의 종을 가리킨다.

 

(이 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