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도심도설(人心道心圖說)

 

이 도설은 율곡이 돌아가시기 1여년 전인 47세 때 선조 임금의 교지(敎旨)를 받들어 지어 올린 것으로, 그의 철학 사상을 최종으로 요약 정리한 역저(力著)이다.

 

신(臣)은 살피건대,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性)과 기(氣)를 합하여 일신을 주재(主宰)하는 것을 심(心)13)이라 이르며, 심(心)이 사물(事物)에 감응(感應)하여 외부에 발현(發見)된 것을 정(情)이라고 말합니다.

성(性)은 바로 마음의 본체(本體)요, 정(情)은 바로 마음의 작용(作用)이며 심(心)은 아직 외부로 표현되지 않은 것과 이미 외부로 표현된 것을 모두 합한 명칭입니다. 그러므로 심통성정(心統性情: 심이 성과 정을 통섭한다.)15)이라고 이르는 것입니다.

성(性)의 조목이 다섯이 있으니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요, 정(情)의 조목이 일곱이 있으니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입니다.

정(情)이 외부로 나타날 때 도의(道義)를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어버이에게 효도하고자 하고, 임금께 충성하고자 하는 것과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져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측은(惻隱)해하고, 옳지 않을 것을 보고 부끄러이여겨 미워(羞惡)하며, 종묘(宗廟)를 지나갈 때 공경하는 마음이 나오는 것와 같은 것이니, 이것을 도심(道心)이라 이릅니다.

정(情)이 외부로 나타날 때에 생리적 충족(口體)16)를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배가 고프면 먹으려 하고, 추우면 입으려 하고, 피로하면 쉬려고 하며, 정기(精氣)가 왕성하면 아내를 생각하는 유와 같은 것이니 이것을 인심(人心)이라 이릅니다.

이(理)와 기(氣)는 혼융(渾融)17)하여 원래 서로 떨어질(相離)18) 수 없는 것이니 심이 동하여 정이 될 때 외부로 나타나는 것(發之者)은 기(氣)이고 나타나게 하는 까닭(所以發者)19)은 이(理)입니다. 그래서 기(氣)가 아니면 외부로 나타날 수 없고(不能發), 이(理)가 아니면 나타나게 할 까닭이 없으니(無所發) 어찌 이(理)도 외부로 타나나고 기(氣)도 외부로 나타난다(理發氣發)20)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도심은 비록 기(氣)에서 떠나지 못하나 그것이 말할 때는 도의를 위한 것이므로 성명(性命)에 소속시키고, 인심은 비록 또한 이(理)에 근본하는 것이나 그것이 발할 때는 생리적 충족(口體)을 위한 것이므로 형기(形氣)에 소속시켰을 뿐입니다.

방촌(方寸:마음을 이름)의 가운데는 당초부터 이심(二心)은 없고, 다만 발하는 곳에 도의를 위하고 주체를 위하는 두 가지 단서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심을 발하는 것은 기(氣)이지만 성명(性命)이 아니면 도심은 발생하지 아니하고, 인심을 근원(根源)하는 것은 이(理)이지만 형기(形氣)가 아니면 인심은 발생하지 아니하니, 이것이 바로 성명에서 근원한다는 것과 형기에서 발생한다는 것(或原或生)은 공(公)과 사(私)21)의 차이가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도심은 순수(純粹)한 천리(天理)이므로 선만이 있고 악은 없으며, 인심은 천리도 있고 인욕도 있으므로 선도 있고 악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마땅히 밥을 먹어야 할 때 먹는 것이나 마땅히 옷을 입어야 할 때 입는 따위는 성현도 이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은 천리이고, 식색(食色)의 생각으로 인하여 흘러서 악이 되는 것은 인욕입니다.

도심은 단지 지키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인심은 인욕에 흐르기가 쉬우므로 비록 선하여도 또한 위태로우니,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한 생각이 나타날 때에 그것이 도심인 줄을 알면 곧 확충하고(擴而充之)22), 그것이 인심인 줄을 알면 곧 정밀하게 성찰(省察)23)하여 반드시 도심으로써 절제(節制)24)하여, 이렇게 인심이 항상 도심의 명령을 듣게(聽命)25) 되도록 하면 인심도 또한 도심이 될 것이니 어찌 이(理)가 보존되지 않겠으며 어찌 인욕(人慾)을 막지 못하겠습니까.

진 서산(眞西山)이 천리와 인욕을 지극히 분명하게 논한 것은 배우는 사람이 공부하는 데 매우 유익한 점이 많지만, 인심을 오로지 인욕이라는 한 가지 의미로만 해석하여 인심을 억제하는데 치중(克治)27)하라고만 한 것은 미진(未盡)한 것이 있습니다.

주자(朱子)가 이미 말하기를, "비록 상지(上智)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다."28) 하였으니, 성인도 또한 인심이 있는 것인데, 어찌 전부를 인욕이라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을 가지고 관찰하건대 칠정(七情)은 인심과 도심, 선과 악을 모두 합한 의미가 간직되어 있는 것입니다.

맹자는 칠정 중에 나아가 선한 것 한쪽만을 뽑아내어 사단(四端)으로써 지목하였으니, 사단이란 곧 도심 및 인심의 선한 것입니다. 사단에 신(信)을 말하지 않은 것은 정자가 말하기를 "이미 성심(誠心)이 있어 사단이 된 것이니 신(信)이 그 가운데 있다." 하였습니다.

대개 오성(五性 : 인·의·예·지·신)의 하나인 신(信)은 오행(五行)의 하나인 토(土)와 같은 것이어서 동서남북의 일정한 위치도 없고 그렇다고 오로지 기(專氣)29)라고만도 할 수 없는 것이며, 언제나 어디에든지 왕성하게 접하여(寄旺)30) 있는 것입니다.

논하는 사람이 혹은 사단을 도심이라 하고 칠정을 인심이라 하는데, 사단은 진실로 도심이라고 이를 수 있으나 칠정을 어찌 인심이라고만 이를 수 있겠습니까? 칠정 이외에 다른 정이 없는데, 만약 치우치게 인심만을 지칭(指稱)한다면 이것은 그 절반만 들추고 절반은 버린 것입니다.

자사(子思)31)가 칠정의 미발한 것을 중이라 이르고 이발한 것을 화32)라고 말하여 성정의 전덕(性情之全덕)33)을 논하면서 다만 칠정만 거론했을 뿐이니 어찌 치우치게 인심만을 거론했을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칠정이 인심과 도심, 선과 악의 총칭인 것임>이 명확하여 의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심도심도설성(性)은 심(心) 갖추어져 있는 것이고, 성(性)이 외부로 나타나서 정(情)이 되는 것입니다. 성(性)이 본래부터 선한 것이어서, 정도 또한 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어떤 경우에 정이 선하지 않은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理)는 본래 순수하고 지극히 선(純粹至善) 하지만, 기(氣)는 청(淸)과 탁(濁)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기는 이를 담는 그릇(盛理器)34)입니다.

기가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때에는 사물에 작용(用事)하지 않으므로 중체(中體)가 순수하게 선하지만, 기가 발현될 때는 선과 악이 비로소 나누어집니다. 선한 것은 맑은 기운(淸氣)이 발현된 것이고, 악한 것은 탁한 기운(濁氣)이 발현된 것이지만 그 근본은 다만 천리(天理)일 뿐입니다.

정(情)의 선한 것은 맑고 밝은(淸明) 기를 타고 천리를 따라 곧고 바르게 출현하여 중(中)을 잃지 않으니 그것이 인·의·예·지의 단서가 되므로 이 단서들을 사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情)의 선하지 않은 것은 비록 또한 이에 근본한 것이지만 이미 더럽고 탁한(汚濁) 기에 가려져서 본체를 잃고 정상적으로 발현되지 못하는 것으로 혹은 지나치고(過) 혹은 미치지 못하기도(不及)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情)이 선하지 않은 것은 정(情)이 인(仁)에 근본하면서도 도리어 인을 해치고, 의(義)에 근본 하였으면서도 도리어 의를 해치고, 예(禮)에 근본 하였으면서도 도리어 예를 해치고, 지(智)에 근본 하였으면서도 도리어 지를 해치므로 사단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논의한 정에 선한 것도 있고 선하지 않은 것도 있다는 의미는 주자(周子)35)가 "오성(五性)이 감동하여 선과 악이 나누어진다."36)고 하였고, 정자는 "선과 악이 모두 천리이다."37) 하였으며, 주자(朱子)는 "천리로 인하여 인욕이 있다.”38) 라고 말한 것들과 같은 뜻입니다.

오늘날의 학자들이 선악이 기의 청탁에 연유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그 이론들을 탐구하여도 해득하지 못하겠으므로 이발을 가지고 선을 삼고 기발을 가지고 악을 삼아 이기로 하여금 서로 분리되는 잘못이 있게 하였으니, 이는 밝지 못한 이론입니다.

신은 어리석고 외람됨을 생각하지 못하고, 삼가 도표(圖)를 그려 올리는 것입니다.

 

< 주 >

13) 혼융한 속에 허령지각하여 일신을 주재하는 것이 심이니, 심이라고 하면 벌써 성이 거기 있는 것이다. 성과 기를 합한다는 말은 따로 있는 것을 합한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문사를 가지고 의미를 해치는 것은 작자의 본의가 아닐 것이다.

14) 「역경(易經)」에 이른바 무사야(無思也)하며 무위야(無爲也)하야 적연부동(寂然不動)한 상태에 있을 때를 미발이라고 한다. 이발이란 사물에 접응(接應)하여 주재활동을 개시한 것이니, 감이수통천하지고(感而遂通天下之故)를 이른다. 재사변시이발(재思便是已發)이라 하여 겨우 생각하기만 하면 벌써 미발은 아니라는, 미발·이발의 한계를 말한 정자의 생각은 정미하다 하겠다.

15) 심이 성정을 통괄(統括)하는 것이니, 이는 장 횡거(張橫渠)가 한 말이다.

16) 의복·음식 등 일신에 관한 모든 것을 이른다. 형기(形氣)라고도 말한다.

17) 두 가지 물건이 분리되지 않고 한 덩어리로 된 것을 이른다. 그러나 작자가 말하는 이·기의 혼융은 두 가지는 두 가지이지만 분리하여 있던 것이 결합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본래부터 한 덩어리라는 의미이다.

18) 이와 기의 관계는 불상리(不相離)이며 불상잡(不相雜)이나 용이하게 말할 수 없다. 여기서는 혼융하여 상리하지 않음을 이른 것이다.

19) 발하는 것이 기라는 말은 형이하적(形而下的) 활동을 이르고, 소이발자(所以發者)란 기가 발하는 형이상적 원리를 가리킨다.

20) 사단(四端)은 이(理)의 발이고 칠정(七情)은 기(氣)의 발이라는 의미의 말이니, 사단 칠정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이라고 한다. 작자는 기발이승설(氣發理乘設)을 주장하여 이발·기발의 호발설은 배척하였다.

21) 이것은 주자의 「중용」 서(序)에, 인심도심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혹생형기지사성명지정 천리지공 욕문사(或生形氣之私性命之正 天理之公 欲文私) 라 한 말을 인용하여 말한 것이다.

22) 심이 발하였을 때 도심인 줄 알았으면 확이충지(擴而充之)하라는 것이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상에 보이는 말이니, 확은 추광(推廣)하는 뜻이요, 충지(充之)는 충실(充實)하는 것이다. 도심의 본연의 양(本然之量)을 추광 충실하라는 의미이다.

23) 심이 발하는 기미의 즈음[機微之際]에 있어 정밀 관찰하라는 말이다.

24) 도심이 인심을 한절(限節)하고 제약(制弱)해서 인목으로 흐르지 않고 전도에 맞게 하는 일을 말한다.

25) 청종(聽從)한다는 뜻이다. 언제나 도심이 마음의 주종(主宗)이 되도록 해서 인심은 거기 청종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26) 진 덕수(眞德秀), 서산은 그 호이며, 송(宋) 나라 사람으로 주자 이후의 거유(巨儒)이다.

27) 극복(克服)해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28) 주자는 「중용」 서문에서 雖上智 無人心 이라 하여 성인도 인심이 있음을 말하였다.

29) 춘하추동의 사기(四氣)에서 어떤 한 절기(節氣)를 전담한다는 말이다.

30) 오행의 토(土)는 전기하지 않고 사시의 말절에 각각 18일씩 토왕(土旺)으로 붙여 수·화·목·금, 춘·하·추·동이 토를 떠나지 못함을 나타내고 있으니, 인·의·예·지도 신(信)을 바탕으로 하여 이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31) 공자의 손자, 이름은 급(伋). 자사(子思)는 자이며 밀의 자(子)자는 존칭으로 붙인 것이다. 「중용(中涌)」의 저자로 알려지고 있다.

32) 「중용」에 희·노·애·낙이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한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고 보인다.

33) 중은 성의 덕(德)이고 화는 정의 덕이다. 미발일 때의 성의 상태는 불편불의(不偏不倚)한 중(中)이 정상이요 지선한 것이므로 성(性)의 덕 또는 성의 전덕이라고 하고, 이발하였을 때의 정(情)의 상태는 중절(中節)하여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화(和)가 지극한 것이므로 정의 덕 또는 정의 전덕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34) 「역경(易經)」 계사(繫辭)에 형이상자를 도라 이르고 형이하자를 기라 이른다[形而上者 謂之道 形而下者 謂之器] 고 하였다. 도는 기가 아니면 기우(奇寓)할 데가 없으며 기는 도가 아니면 존재할 이치가 없다. 그래서 도즉기 기즉도(道卽器 器卽道), 또는 도역기 기역도(道亦器 器亦道)라고 정 명도는 도기의 관계성을 말하였다. 도기(道器)와 이기(理氣)의 관계는 통하여 말할 수 있으므로 작자는 성리(盛理)하는 기(器)라 한 것이다. 성리니, 대리(戴理)니, 재도(載道)니 하는 말은 모두 도(道)와 기(氣), 이(理)와 기(氣)의 관계 속에서의 도우기(道禹器) 이탑기(理搭氣)를 이르는 것이다.

35) 북송(北宋)의 학자로 이름은 돈이(敦이), 호는 염계(렴溪). 정자 형제가 사사(師事)하였다.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를 지었다.

36) "오성이 감동함에 선악이 나누어진다. [五性感動而善惡分]" 고 「태극도설」에서 말하고 있다 이는 오성(五性)이 만물에 감응하여 동하면 양선 음악(陽善陰惡)으로 유분(類分)된다는 말이다.

37) "선악이 모두 천리[善惡皆天理]" 라는 말은 악도 또한 본래부터 악이 아니고 선이 중간에 악으로 변질된 것이니, 그 근원을 말하면 이선 기악(理善氣惡)으로 분리할 수만은 없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38) "천리로 인하여 인욕이 있다. [因天理而有人欲]" 는 말은, 앞서 정자가 말한 선악이 모두 천리라는 말과 그 맥락(脈絡)을 같이하고 있다. 다만 주자는 "천리로 인하여 인욕이 있다고 하면 가하지만, 인욕도 역시 천리라고 하면 불가하다"고 하였다. 주자의 이 말은 「주자 대전(朱子大全)」 답하숙경서(答何叔京書)에 보이는데 「성리대전(性理大全)」이나 답장경부서(答何叔京書) 또는 「통서(通書)」를 해석하는 데서도 이러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