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흥(韓長興) 온(蘊)의 기록 뒤에 쓴 발문(韓長興蘊敍後跋)

 

이 글은 율곡이 25세 때인 1560년(명종 15)에 지은 것이다. 그 내용은 1555년(명종 10)에 있었던  왜구 침략인 을묘왜변(乙卯倭變)때 장흥부사로 있다 절사(節死)한 한 온(韓蘊)에 대하여 맹랑한 말이 떠돌았는데 율곡이 이의 진상을 밝혀 한 온을 칭송하여 충절(忠節)을 포상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을묘년(명종 10, 1555)에 도이(島夷:섬오랑캐, 왜구(倭寇)를 이름)가 불공하게 침입하여 왔다. 남쪽 변방의 방비가 허술하여 방종한 적병이 우리 백성을 살상하였는데도 마침내 그들의 각거(角距:소의 뿔과 닭의 뒷발톱)를 뽑아버리지 못하다. 이때에 절개를 지켜 죽어서 남달리 뛰어나게 칭송할 만한 사람은 오직 장흥부사(長興府使) 한 온(韓蘊) 한 사람뿐이다. 세상 풍속이 남의 아름다운 장점을 성취시켜 주기를 좋아하지 않아 혹은 구차히 살아 있다고 무함하는 등 헛소문이 쉬지 않고 일어나서 충의를 다하여 죽은 귀신으로 하여금 구천(九泉)의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아! 애석한 일이로다.

내가 고 이순(高而順)의 저술한 글을 읽어보았는데 한 장흥의 일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아마 거처하는 곳의 거리가 멀지 않아 깊이 그 사실을 찾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에 비교할 것은 아니리라. 다만 명백하게 이해시킬 만한 것이 오히려 충분하지 못해서 중인들의 의혹을 깨끗이 씻어내 버릴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절의를 세운 선비가 끝내 세상에 명확하게 표창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다시 한 마디 말을 덧붙이는 바이다.

대저 구차하게 생존하는 것과 절의를 세워 죽는 것은 다만 죽음을 두려워하느냐 두려워하지 않느냐에 있을 따름이다. 이 두 가지는 본래부터 마음속에 정해져 있는 것으로서 하루아침에 취해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차스럽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쌓여 있으면 위급한 경우를 당하였을 때 다리는 반드시 두려워서 부들부들 떨리고 목소리는 반드시 공포 속에 움츠러들 것이니 비록 억지로 그렇지 않은 체하며 외모에 기운을 드날려 보려고 하더라도 능히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며, 절조를 세우려는 의리가 마음속에 격동하여 일어나면 기운은 반드시 왕성하고 싸우면 반드시 용감하여 형세가 급하면 급할 수록 마음은 더욱 씩씩하여 가리울래도 가리울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사람을 관찰하면 충분하다.

달량포(達梁浦)가 포위되었을 때 안으로는 즉묵성(卽墨城:연(燕)나라가 제(齊)나라를 칠 때에 최후까지 버틴 제나라의 성)처럼 지킨 상황이 아니고 밖으로는 위(魏)나라의 구원(조(趙)나라가 위급할 때 위나라가 구원한 일)이 끊어졌으며 군사는 당장 먹을 양식이 떨어졌고 도적은 숲처럼 모여들었으니 시일을 지정해 놓고 죽음을 기다리게 된 것은 어리석은 사람도 다 아는 터인데, 한 장흥이 풍질(風疾)을 앓고 제정신을 잃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그가 반드시 죽을 것임을 알지 못하였겠는가.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살아날 길을 찾지 않고 도리어 몸을 떨쳐 일어나 용기를 분발해서 반드시 죽을 결심을 보여 주었겠는가. 이미 대의(大義)로써 사졸을 격려하고 자신은 나라를 위해 죽을 것을 맹서하였는데도 잠깐 사이에 변하여 조수(鳥獸)와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인정이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죽음을 두려워하는 군사가 스스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은 군령(軍令)이 꼼짝 못하게 얽어매고 있기 때문일 뿐인데 달량포의 사정은 그렇지도 않았다.

주장(主將)이 조처를 잘못하여 병사들의 싸울 마음이 없어졌으니, 한 장흥이 참으로 제 몸을 스스로 아끼는 자였다면 아직 급박해지기 전에 몸을 빼내어 적의 칼날을 피하였더라도 또한 누구도 힐문(詰問)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주장(主將)을 꾸짖어 생사(生死)를 돌아보지 말고 싸울 것으로써 면려하였겠는가? 어린 아이와 같은 용렬한 자로 장수를 삼아 비겁하고 나약한 것으로써 좋은 묘책으로 삼았는데도 성중의 병사들이 오히려 곧바로 흩어져 달아나지 않은 것은 다만 한 장흥이 있어 능히 사기(士氣)를 진작하였기 때문일 뿐이다. 한 장흥이 아니었다면 사람마다 제각기 스스로를 구하였을 것이니 뉘라서 마음내켜 한 개의 화살이나마 쏘았겠는가. 비록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도 오히려 중지(衆志)를 하나로 묶는데는 어려움이 있는데, 더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로서야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온 군대가 한 장흥에 의지하여 큰 힘을 삼았는데도 도리어 죽음을 두려워한 자로 지목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또 도륙(屠戮)된 나머지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쳐 살아난 자는 하급 졸병들에 불과할 따름이며 장수는 살아 남을 이치가 없다. 이 전쟁에서 수오심(羞惡心:正義感)은 싹 버려 버리고 오직 사는 것만을 바란 사람으로는 누가 원 적(元績:전라 병마절도사) 같은 자가 있으리오마는 마침내 죽음을 면치 못한 것은 단지 장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도망쳐 숨어서 피할 수 있었다면 저 산에 나는 국궁(麴:궁궁이니 약재로 쓴다)은 원 적의 모자란 바가 아니며 무릎을 꿇어 항복해서 살 수 있었다면 옛 고국산천은 원 적의 생각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살고자 한 원 적도 오히려 날카로운 칼에 참살을 당했는데, 하물며 죽기를 기약한 한 장흥의 신분이 표출되는 장식(章飾)도 변경하지 않고서 도적의 지목하는 바 된 것이겠는가. 장흥(長興) 고을의 사수(射手:궁수를 이름)로서 한 장흥을 따라 죽은 자가 매우 많으니, 이 무리들이 어찌 모두 지기(志氣)가 고결(高潔)해 절의를 세운 자이겠는가. 단지 한 장흥의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을 보고서 본받은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한 장흥 혼자서 칼날을 피하고 그 무리들은 절개를 세워 죽었다면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겠는가.

의논하는 사람들은 모두 시체를 찾지 못한 것으로써 한 장흥을 혐의하고 있으나 이것도 또한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이다. 섬나라 오랑캐는 오직 참혹한 것만을 즐기어 우리 군사 중에 조금이라도 힘들여 싸운 사람이면 반드시 사지를 분해하였다. 저들 몸과 머리를 나누이지 않아 아무개 시체임을 불변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꼬리를 흔들어 살기를 애걸한 자일뿐이다. 한 장흥과 같이 비분 강개하여 죽기를 기약한 장수는 잔인한 도적의 칼날에 어육(魚肉)을 당하였으니 그 시체를 찾지 못할 것은 진실로 당연하다. 이로써 그의 유쾌하게 죽은 것이 더욱 증험되는데도 도리어 의혹을 일으키겠는가. 세상사람들은 그 공적은 가리우고 그 하자(瑕疵)를 찾아내어 필연적인 죽음은 믿지 않고 굳이 이치에 맞지 않는 생존만을 구하고 있으니 어찌 판단을 그르친 것이 아니겠는가? 이리하여 혹 정처 없이 떠도는 중〔衲〕이 나타나 그 모양이 좀 수려하다던가, 그 행적이 좀 비밀스러워 보이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를 가리키어 한 장흥으로 여겨 여러 사람들 입에 떠들썩하게 오르내리니, 의혹 되기는 쉽고 해명되기는 어렵다. 비록 평소에 한 장흥을 아는 사람이라도 능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직접 눈으로 보고 난 뒤에 라야 그제야 그것이 허위인 줄을 알게 된다. 저를 알지 못하는 자는 진실로 말할 것도 못되지만 눈으로 보고서야 허위임을 아는 자도 또한 깊이 아는 사람은 아니다.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도 오히려 적은 편이니 허망한 말을 하는 것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는가. 슬프도다! 한 장흥을 아는 자는 그가 반드시 죽었음을 밝히고 한장흥을 알지 못하는 자는 그가 반드시 살았을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죽었음을 밝히는 자는 진실로 적고 또 사람들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며 살아있을 것을 지적하는 자는 참으로 많으며, 더욱이 중인들에게 믿음을 얻고 있으니, 이것이 아는 자는 그 진실을 전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자는 깊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 또한 괴이하도다.

세상에서 한 장흥을 아는 자로는 그 처자(妻子)와 같은 이가 없을 것이고 한 장흥이 요행히 살아 있기를 원하는 자도 또한 처자만 같은 이가 없을 것이다. 그 처자의 구구하게 요행히 살아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서도 마침내 살아 있을 이치를 구하지 못하는데 아무 관계 없는 길 거리의 사람들은 종종 한 장흥을 보게 되니, 이것은 지극히 알지 못하는 자가 지극히 친한 처자만 같은 이가 없고 지극히 잘 아는 자가 아무 관계없는 길거리 사람들만 같은 이가 없으며, 온 나라의 아무 관계없는 길거리 사람들은 모두 한 장흥에 대하여 지기(知己)가 되고, 평생을 같이하는 친척·골육은 모두 관계가 없는 연·월(燕越)이 된 것이다. 아는 자는 마땅히 적어야 하는데도 도리어 많고 알지 못하는 자는 당연히 많아야 할 터인데도 도리어 적으니 이것이 어찌 이치이겠는가. 남방에 전전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이 한 장흥으로 여기고 북방에 또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또한 한 장흥으로 여기니, 그가 살았을 때는 다만 한 사람의 한 장흥이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가 죽어서는 어찌 그리 많아졌는가?

민심이 옛날처럼 순후하지 못하여 남을 훼방하기를 즐기고 허탄(虛誕)한 것을 부추기기를 기뻐하여 남에게 한 가지 선한 일이 있으면 다만 선양하여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둘러 그 하자를 찾아내 오히려 선한 일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하고, 남에게 한 가지 악한 일이 있으면 다만 숨겨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둘러 그것을 들춰내서 오히려 악한 일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소인은 대부분 이와 같은 데 군자야 그것을 믿겠는가?

아! 잘 다스려져 태평한 세상에서는 뛰어난 선비라도 혹 파묻혀져서 나타나지 않기도 하며, 오히려 대변(大變)을 만나야 어떠한 선비인가 알 수 있다. 섬 오랑캐가 몰려와 꽉 찼을 즈음에 죽을 결의를 가지고 국가의 원수를 위하여 싸우는 자는 손가락을 꼽아 셀 만한 사람이 없었고, 시기에 임하여 굽어 휘어져서 여우처럼 약삭빠르게 전진했다가 쥐처럼 재빠르게 퇴각하는 자는 앞뒤로 연이어 있었다. 오직 한 장흥은 외로운 성에 몰려서 자신이 거의 살 희망이 없는 요충을 감당하면서 불의(不義)앞에 굴하지 않았으니 그 절개가 옛사람보다 못하지 않다. 만일 이런 사람을 끝내 포상하지 않아 성(城)을 팔고 군대를 전복시킨 자와 더불어 동일한 죽음으로 돌아가게 한다면 장차 어찌 후일의 의리를 사모하는 선비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세상의 춘추필법을 잡은 자는 이 점에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달량성이 거의 함락되려는 때에 도망하여 죽지 않은 자가 또한 있어서 원 적과 한 장흥에 관한 일을 말하였는데, 당초에 변란이 일어났음을 듣고 한장흥은 안렴사(按廉使)의 명에 의하여 장차 가리포(加利浦)에서 적병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도중에 병사 원 적을 만나 함께 달량성으로 들어갔다. 원 적은 한 장흥을 만류하여 같이 지키자고 하니 한 장흥은 말하기를, "공도 또한 진주(鎭主:번진의 주장)이니 명령대로 따라야 하겠습니다마는, 다만 안렴사가 이미 명령한 것이 있으니 중도에 그만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원 적은 붙잡아 놓고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이튿날 적이 뭉쳐서 벌떼와 개미떼처럼 온 들판을 뒤덮고 끝없이 몰려왔다. 우리 군대는 이미 고단하고 성도 도랑이 깊지 못하였으며, 성 위에 쌓은 성첩〔雉堞〕76) 등도 어린 아이들 장난거리 같았다. 이런 까닭으로 해서 군사들은 산 사람의 얼굴빛이 없었다. 원 적은 북문을 지키고 한 장흥은 남문을 지켰는데, 전투가 벌어지자 원 적77)은 몰래 한 장흥에게 와서 말하기를, "적의 강성한 기세가 북쪽으로 달려오는데 내가 능히 지탱할 수 없으니 장차 어떻게 할까." 하였다. 한 장흥은 노기 띤 눈초리로 원 적을 흘겨보면서 대답하기를 "주장이 한번 요동하면 누가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겠습니까? 싸움은 이제 졌습니다. 그러면 공은 우선 남쪽을 지키시오. 나는 마땅히 북문에서 죽겠오." 하였다.

드디어 북문에서 분발하여 싸움을 독려하기를 매우 급하게 하니 화살이 헛나가지 않아서 도적의 대열이 궤산(潰散)되었다. 조금 후에 적들이 크게 떠들면서 남문으로 가까이 달려가니, 원 적은 이처럼 기어가서 군졸 사이에 엎드려 숨어 말 한 마디 못하고 옷을 벗어 항복문을 보내 죽음을 자청했다. 적들은 성에 올라와 삼대를 베고 풀을 깎듯이 모조리 살륙했는데 한장흥은 남문에서 살상하는 소리가 많이 나는 것을 듣고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활을 당기어 적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있는 부하에게 눈짓을 하며 말하기를. "일이 다급하여 밥먹을 겨를이 없으니 네가 의거(薏 :율무와 흑임자 따위)로 죽을 쑤어 가져오너라." 하였다.

부하가 부엌으로 들어가 준비하여 죽대접을 받들어 올리려고 하는데 적병이 이미 가까이 달려들었다. 죽그릇을 내 던지고 달아나 뒷간에 몸을 감추어 죽지 않고 있다가 도적이 물러간 뒤에 기어 나와 보니, 온 군대가 모두 죽었고 흐르는 피는 길에 물결을 이루었다. 처음에 한 장흥이 원 적의 경솔하고 또 겁내는 것을 보고 반드시 일을 실패시킬 줄 알고 머리를 베어 조리를 돌리려고 하였으나 부장(副將)의 신분으로서 형세가 외로워 능히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또 담양(潭陽)에 사는 수졸(戍卒)이 있었는데, 그는 포위 속에서 또한 중상을 입었으나 죽지 않고 성을 넘어와 겨우 면하였다. 밖에서 바라보니 한 장흥은 창을 비껴 들고 성 위에 서 있고 적은 사방으로 둘러싸 칼날을 번쩍거리고 있었으니, 그 형세가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내가 고 이순의 기록을 보니 이것은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서술하여 빠진 것을 보충하는 바이다.

 

< 주 >

76) 치는 성장(城墻)의 면적단위를 이르는 말이다. 길이가 1장(丈:한 발)에 높이 1장의 면적을 1도(堵)라 하고 높이는 1장이고 길이가 3장이면 3도라고 하며 3도가 1치(雉)가 된다. 도성은 백치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첩은 성위에 둘러쌓은 담장이니 이를 여장(女墻)이라고 한다. 《禮記 坊記》

77) ?∼1555년(명종 10)의 무신으로 1519년(중종 10)에 무과에 장원하였다. 을묘왜변 당시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