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통변(學부通辨)의 발문

 

이 글은 율곡이 46세 때인 1581년(선조 14)에 지은 것이다. 「학부통변」을 저작한 진 건(陳建)은 명나라 가정(嘉靖)(1522∼1566)의 거인(擧人)으로서 신양 현령(信陽縣令)을 그만두고 저술을 전업하였으니, 적어도 율곡보다 40년 이상 선배인 것 같다.「학부통변」은 문자 그대로 학문을 가려 장애가 되는 것을 통틀어 분변한 저술로, 주자의 정학을 위하여 선불과 육왕의 이학(異學)됨을 밝힌 것이다. 총 12권으로 되어 있다.

 

기(氣)는 홀로 양(陽)만 있고 음(陰)이 없을 수 없으며 학문은 홀로 정(正)한 것만 있고 사(邪)한 것이 없을 수 없는 것은 자연의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당우(唐虞)와 삼대(三代)에는 도가 진실로 크게 밝고 크게 행하였는데도 사흉(四凶)89) · 비렴(飛廉) · 악래(惡來)90)의 무리가 대대로 그치지 않고 나타나 또한 족히 정도를 해치게 되니 이것이 곧 이단(異端)의 시작인 것이다.

다만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상하에서 번갈아 닦는 다스림에 힘입어 정도는 자라나고 사악은 소퇴(消退)했기 때문에 비록 이단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단의 해독을 받지 않았었다. 주(周) 나라의 도가 쇠약해지니 비로소 노장(老莊: 노자와 장자)과 양묵(楊墨: 양주와 묵적)이 있어 그 사특(邪慝)한 말을 제멋대로 늘어놓았다. 이들은 비록 맹자가 물리쳤지마는 또한 지식시키지는 못하였다.

대개 상고시대의 이단은 분명하게 사악한 것이 드러났으므로 현자(賢者)는 오히려 혹시라도 더럽혀질까 두려워했는데, 중고시대의 이단은 이욕(利欲)을 말끔히 벗어나 사악하여도 바른 것 같았으므로 현자가 고혹되기 시작하였다.

한(漢) 나라 이하부터는 또 불학(佛學)이 있고 당(唐) 나라 이하부터는 불학이 변하여 선학(禪學)이 되었다. 그 말이 정미하여 사람을 선동하는 정도가 노장이나 양묵에 비교할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에 이르러 고명(高明)한 선비들이 미연(靡然: 바람에 풀이 쓰러지듯 한군데로 쏠리는 모양)히 그리로 따라서, 드디어 중국으로 하여금 선불(禪佛)의 세계가 되게 하였으니 생각하면 비탄스러운 일이다.

다행히 정자와 주자가 흥기하여 무너지는 우주를 떠받치고 일월을 깨끗이 닦아 밝게 하였으니, 이단을 꺾어 무너뜨려 훤하고 맑게 한 공적은 옛사람에 견주어 보더라도 더욱 성대한 편이다. 이에 이르러 선불의 학문은 쇠퇴하여 떨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자 · 주자가 이미 별세하고 나니, 이에 밖은 유학이나 속은 선학인 학문이 있어 마치 꺼진 재를 불어 불을 일으키듯 하여 다시 세상에서 기세가 성하였으니, 심하도다! 이단의 멸식(滅息)시키기 어려움이 이와 같음이 있구나.

청란(淸瀾: 진 건의 호) 진 건(陳建)씨는 개연(慨然)히 사특한 것을 물리치고 정도를 부식(扶植)하는 것으로써 목적을 삼아「학부통변(學부通辨)」을 저작하였다. 여기서 널리 수탐(搜探)하고 깊이 궁구하며 밝게 분변하고 상세히 말하여 육 상산(陸象山)과 왕 양명(王陽明)의 가리고 감춘 속셈을 손가락으로 집어내듯 하여 방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속여서 유혹함을 당하지 않게 하였으니, 그 뜻이 참으로 훌륭하고 그 의론이 매우 정대하다.

다만 알 수 없는 것은 진씨가 평소에 쌓은 학행과 덕업이 신임을 얻어 천하 후세에 얼마나 무게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성리의 중요한 대목을 말한 것도 또한 능히 미묘한 것을 극진히 하지 못하여 조금도 출입시킨 점이 없다. 단, 그 말로 인하여 육 · 왕(陸王)의 사특한 술법〔邪術〕을 깊이 알아낼 수 있으니 그 공적이 이미 큰 편인데, 어찌 허물이 되는 곳을 찾아 지적해서 사론에 편당하는 구실을 도와줄 필요가 있겠는가?

식자가 혹 이 글이 지나치게 장황(張皇)해서 정밀하고 요약된 의미가 부족하다는 것으로써 의문을 삼기도 하니 이것 역시 그럴 듯한 말이기도 하다. 단, 중국조정의 선비들이 육 상산의 학문에 휩쓸려 들어가, 전해 듣기로는 왕 양명이 문묘 종사의 대열에 참여했다고 하니, 그렇다면 사특한 말의 재화가 저 홍수가 산을 둘러싸고 언덕을 넘나들 듯이 극심한 형세이므로 필부(匹夫)의 힘으로는 이것을 구제하여 그치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진씨가 눈을 부릅뜨고 용기를 내어 외로이 부르짖으면서 홀로 대항하게 되니, 그 말을 이끌어 올려 스스로 높이지 않을 수 없으며, 어려움을 배제하고 어지러운 것을 해결할 목적으로 웅변을 힘쓰다 보니 과연 정약(精約)을 위주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무엇이 해로울 것이 있겠는가? 다만 일월을 배열함에 반드시 주자로써 42, 3세 전에는 능히 선학의 범주〔과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고 상산(象山)을 본 뒤에도 오히려 반신반의함을 면하지 못하였다고 하니 이것은 잘못이나, 그 공을 취하고 그 허물을 생략하는 것은 또한 충후(忠厚)한 도리이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중조(中朝)의 선비는 육 상산의 학문에 많이 물들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듣지 못하였으니 아마 우리나라 인심의 바른 것이 중국 사람들 보다 나은 것인가" 하기에,

나는 대답하기를, "육 상산의 학문에 물들지 않고 오로지 주자의 학문을 공부하는 데 힘써 잘 알고 잘 실천한다면 중국보다 낫겠지만, 만약 이욕(利欲)만을 오로지 힘써 취하여 주자의 학문과 육 상산의 학문을 둘다 폐한다면 그 우열(優劣)이 어떠하겠는가? 나는 일찌기 탄식하기를, 중국의 선비는 오히려 일삼는 것이 있어서 여간해서 방심(放心: 마음을 다잡지 아니하고 풀어 놓아버림)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주자의 학문을 하기도 하고 혹은 육 상산의 학문을 하기도 하여 마침내 헛되이 인생을 보내지 않으니, 사도(邪道)와 정도(正道)가 비록 다를지라도 오히려 배불리 먹고 종일토록 마음을 쓰는 데도 없이 멍청하게 보내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우리나라 선비는 주자의 학문도 하지 않고 육 상산의 학문도 하지 않고서 오로지 저 세속의 습관만을 힘쓰는 자가 많으니, 이것이야말로 날품팔이꾼이나 장사하는 노복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중국보다 낫기를 구한다면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단(異端)의 말이란 어찌 반드시 불교와 노자와 선학과 육학(陸學)만이 그러한 것이겠는가? 세상에서 선왕 도를 그르게 여기고 나 한 몸의 욕심만을 따르는 자는 이단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만약 세속의 습관으로써 옳은 것을 삼아 부지런히 이욕만을 추구하면서 도리어 육상산의 학문을 비방하고 조소(嘲笑)한다면 이것이 어찌 사흉(四凶)을 존경하여 높이면서 양주와 묵적을 기롱하고 풍자하는 것과 다르겠는가? 아! 세상의 선비된 자는 오로지 정학을 힘쓰고 날품팔이꾼과 장사하는 노복으로 돌아가는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 주 >

89) 순(舜) 시대의 공공(共工) · 환두(驩兜) · 삼묘(三苗) · 곤(곤) 등 각기 대죄로써 처벌된 사악을 이름《書經 舜典》

90) 은(殷) 나라 주(紂)왕의 영신( 臣)이니 악래는 비렴의 아들이다. 비렴은 잘 뛰고 악래는 역사로서, 부자(父子)가 재력(材力)으로 주왕을 섬긴 사악한 무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