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명언(奇明彦) 대승(大升)에게 주다

 

어제 편지를 받고 그 친절히 가르쳐 주신데 대해 감사함을 금할 수 없으나 물러나와 생각해 보니, 끝내 고명(高明: 상대방을 높혀서 일컬는 말)의 뜻을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아마도 저의 식견이 너무 어두워 마침내 도(道)를 배울 수 없는 것입니까? 어쩌면 서로 맞지 않는 것이 이 지경에 이릅니까?

의심스러운 것은 마땅히 물어야 하기에, 다시 고설(고說)59)을 진술합니다.

제가 이른바 "지(知)의 지선(至善)함"이라는 것은 반드시 매우 배척할 것은 아닙니다.

대저 '지선(至善)'이라는 것은 다만 사물의 당연한 법칙일 뿐입니다. 그 법칙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아무 부족이 없는 가장 적합한 곳일 뿐입니다.

통괄하여 말하면 지(知)와 행(行)이 함께 하나의 하자(瑕疵)도 있지 아니하며 온갖 이치가 밝고 극진함에 도달한 뒤에라야 비로소 지선(至善)에 머문다60)고 이를 수 있습니다.

분석하여 말하면 '지(知)'에도 하나의 지선이 있고, '행'(行)에도 하나의 지선이 있는 것입니다. 지(知)가 아무 부족이 없는 가장 적합한 곳에 도달하여 다시 옮김이 없으면, 이것을 "지(知)가 지선에 머물었다"고 하는 것이요. 행(行)이 아무 부족이 없는 가장 적합한 경지에 도달하여 다시 천동(遷動)함이 없으면, 이것을 "행(行)이 지선에 머물었다"고 하는 것이니, 어찌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선생은 다만 통괄하여 말한 '지지선(止至善)'만을 취하였고, 분석하여 말한 '지지선'은 취하지 아니하였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만약 선생의 말과 같이한다면 행(行)에만 다만 지선(至善)이 있을 뿐, 지(知)에는 지선(至善)이 없는 것입니다.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는 것〔有物有則〕61)이니, 지(知)는 어떤 사물(物)이기에 유독 지선(至善)이 없겠습니까?

만약 지(知)가 사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명덕(明德)62)도 또한 물(物)이라고 하는데, 지(知)만이 유독 물이 아니겠습니까?

천하에 이름이 있어 부를 수 있는 것은 모두 물(物)이라고 이를 수 있는데, 어찌 반드시 물건의 물만 물이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대학」의 '지지선(止至善)'도 분석하여 말할 때 명덕에도 지지선이 있고, 신민(新民)63에도 역시 지지선이 있습니다.

명덕에 관해서도 이것을 분석하여 말하면 수신(修身)에도 지지선이 있고, 정심(正心)에도 지지선이 있고, 성의(誠意)에도 지지선이 있고, 격물치지(格物致知)에도 지지선이 있읍니다. 신민에 있어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종합하여 말한다면 명덕과 신민이 모두 지선(至善)에 머물게 된 뒤에라야 비로소 그 지선(至善)에 머무는 본분을 극진히 한 입니다.

어떻게 격물 치지에는 지지선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선생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것이 비록 극진하다 하더라도 아직 궁리 진성(窮理盡性)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더욱이 타당하지 않습니다.

명덕을 밝히는〔明明德〕조목 가운데 '격물' '치지'가 있으니 이것은 '궁리(窮理)'요,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이 있으니, 이것은 '진성(盡性)'입니다.

만약 선생의 설과 같이 한다면 대학(大學)의 공부가 비록 극진할지라도 오히려 성인(聖人)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저 이와 같이 한다면 공자(孔子)가 어찌하여 사람들에게 지극한 도(道)로써 가르치지 아니하고 이에 제2등급의 학(學)으로써 가르쳐 사람들로 하여금 비록 그 도(道)를 극진히 하더라도 다만 제 2등급의 사람이 되게 하였겠습니까?

선생은 또 "능득(能得)64)은 불혹(不惑)의 경지이다. (다시 「대학」을 보니 이 설이 본래 잘못되어 있어 깊이 변설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명덕을 밝히는 것은 아직 궁리 진성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역시 너무 고집한 것입니다.

선유(先儒)의 설은 각기 그 가리킨 바가 있으니, 하나에 집착해서는 아니됩니다.

'능득(能得)'이라는 것은 본래 얕고 깊은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얕은 정도에서 말한다면, 불혹(不惑)도 역시 능득이라고 이를 수 있고, 그 깊은 정도에서 말한다면, "생각하지 않아도 얻고 힘쓰지 않아도 맞아지는(不思而得不勉而中)65) 경지가 아니면 능득에 대한 극진한 공부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찌 대학의 극진한 공부가 '불혹'에서만 머물고 있고, 마침내 성인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판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안자(顔子)도 정심(正心)의 공부를 극진히 하지 못하였다"고 한 것은 이런 말을 초학자가 갑자기 듣고서 이것을 깊이 살피지 아니하면 도리어 폐단이 됩니다. 어찌 선생도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을 줄을 생각했겠습니까?

또 성인은 다만 심성(心性)에만 극진히 했다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아니면 심성에다 호말(毫末)을 더 보탰다고 하겠습니까?

만약 성인이 심성에다 또 더 보태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안자(顔子)는 '심정(心正)'의 극진한 공부를 마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요, 만약 성인은 심성(心性)에다 호말도 더 보태지 않는다고 한다면 안자는 진실로 일호(一毫)의 미진한 곳이 있는 것입니다.

'심정'의 극진한 공부를 아직 마치지 못하였다면 마음의 지(知)도 역시 일호라도 미진한 곳이 있을 것입니다.

또 성인이 "마음의 하고 싶은 대로 따른다〔(從心所欲)〕"66)고 한 것은 마음의 하고 싶은 바가 모두 천리(天理)이기 때문이요, 안자가 아직 마음의 하고 싶은 대로 되지 못한 것은 마음의 하고 싶은 바가 때로는 천리(天理)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른바 "천리가 아니라"는 것은 그 지극히 정미(精微)한 면에서 말했을 뿐이요, 안자가 곧 악념(惡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종심소욕(從心所欲)이 되지 못하였으면 그 심성(心性)에 대해 해야 할 본분을 극진히 하였다고 이를 수 없습니다.

대저 이른바 '성(聖)'이니, '화(化)'니, '신(神)'이니 하는 것은 아득하고 황홀한 경지를 이름이 아니요, 다만 그 심성에 대하여 해야 할 본분을 극진히 한 것일 뿐입니다.

만약 안자가 심성에 대하여 해야 할 본분을 극진히 하였는데도 오히려 화하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이것은 성인의 덕이 반드시 심성에 불필요한 혹〔贅〕이 있는 것이니, 어찌 옳겠습니까?

만약 안자가 이미 심정의 극진한 공부를 마쳤는데도 오히려 심성에 대하여 해야 할 본분을 극진히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대학의 공부는 제 2등급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 선생은 "명덕을 다 밝힌 뒤에라야 비로소 지선(至善)에 머물수 있게 된다"고 하였는데, 저는 "명덕을 이미 다 밝힌 곳이 바로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의 지선에 머문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이 설이 비록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하더라고, 만약 배우는 이가 깊이 살피지 아니하고 명덕을 밝히기를 다한 뒤에 또 지선에 머무르는 공부를 구한다고 하면 어찌 큰 착오가 되지 않겠습니까?

더우기 선생이 이른바 "지선은 중(中)이 아니다"고 한 것은 타당치 않습니다. 지선은 자연으로 있는 중(中)입니다.

성현의 설이 비록 각기 그 뜻이 가리키는 바가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명명(命名)한 것은 실로 하나입니다. 만약 이것을 두 가지로 하면 이미 지선이 있는데, 또 중이 있고, 또 당연의 법칙이 있게 되는 것이니, 배우는 이가 장차 어디로 가서 따라야 하겠습니까?

대저 옛날 학자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실천한 뒤에라야 비로소 말에 나타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은 다만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뿐이니 말하는 것이 막힌 데가 많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군자(君子)는 사람이 부족하다고 그 말까지 버리지는 않습니다.67)

엎드려 바라건대, 다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지당한 논(論)으로 회답해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우리들의 의론이 또 서로 모순되면 어느 겨를에 타설(他說)의 시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한 곳으로 귀착(歸着)하도록 서두르게 되는 소이입니다.

 

< 주 >

59) 이치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이론.

60) 「대학」의 수장에 "止於至善"이란 말이 있다.

61) 「시경」대아(大雅) 증민(烝民)편에 보인다.

62) 사람이 태어날 때 타고 난 밝은 덕. 주자(朱子)는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인데 허령불매(虛靈不 )한 것으로 모든 이치를 구비하여 만사(萬事)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63) 「대학」의 원문(原文)에서는 '친민(親民)'으로 되어 있으나 정·주(程朱)의 계통에서는 이것을「신민」으로 읽으며, 그 뜻도 '신민(新民)'으로 보고 있다. 신민은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뜻인데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가 이에 속한다. 그러나 육·왕(陸王)의 계통에서는 원문 그대로 '친민(親民)'이라 한다.

64)「대학」경일장(經一章)에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이란 말이 있는데. '능득(能得)'은 마땅히 머물러야 할 '지선(至善)'을 능히 체득하는 것이다.

65) 「중용」제20장에 보인다.

66) 「논어」위정(爲政)편에 보면 공자(孔子) 는 70세에 "從心所欲 不踰矩"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67) 「논어」위령공(衛靈公)편에 "君子 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이란 말이 있다.

 

(이 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