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병정사학규(隱屛精舍學規)

 

은병정사는 해주(海州) 석담(石潭)에 있다. 율곡 선생이 43세 때 이곳에 은거하며, 주자(朱子)를 추모하는 한편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세운 서당으로,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 가운데 <대은병(大隱屛)>의 제목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이 글은 율곡 선생이 문인들을 가르친 은병정사(隱屛精舍)의 학칙(學則)이다. 그 내용은 모든 운영은 자치적으로 하여 그 중에서 연장(年長) 유식한 자를 당장(堂長)으로 추대하고, 그 밑에 장의(掌議) 1명, 유사(有司) 2명을 선출하였으며, 윤번으로 직월(直月) 2명을 두었다. 정사 내 일체의 논의는 장의가 주재하고, 직월은 '선악적(善惡籍)'을 맡아 모든 문하생들의 품행을 기록하였다.

 

1. 재(齋)에 들어오는 규칙은 사족(士族)과 서류(庶類: 서민)를 막론하고 다만 학문에 뜻이 있는 사람은 모두 재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되, 먼저 들어온 사람들의 의논이 들어와도 된다고 한 뒤라야 들어오도록 허락한다. 만일 전일에 패악(悖惡)했던 사람이 들어오기를 원한다면 그로 하여금 먼저 스스로 개과(改過)하고 조심하게 한 다음, 그 행동하는 것을 자세히 보아서 그 행위가 개선되었음을 확실히 안 뒤에야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며, 만일 평소에 내력을 모르는 자가 들어오기를 원하면 그로 하여금 우선 가까운 마을(혹은 양정재(養正齋))이나 산사(山寺)에 왕래하면서 배우고 묻게 한 다음, 그 지취(志趣)와 조행(操行)을 보아서 취할 만함을 안 뒤에야 들어오기를 허락한다.

은병정사(소현서원) 전경(1) 재 안에서 나이가 많고 지식이 있는 이 한사람을 추대하여 당장(堂長)으로 삼고, 또 같은 또래 가운데서 학식이 우수한 한 사람을 추대하여 장의로 삼으며, 또 두 사람을 가려 유사(有司)로 삼고, 또 차례로 두 사람을 가려 직월(直月)로 삼는다. 당장과 장의와 유사는 연고가 없으면 갈지 말고 직월은 다달이 서로 교체한다. 무릇 재 안의 의논은 장의가 주도하여 당장에게 물어 본 뒤에 정하고(당장이 연고가 있어서 다른 곳에 있을 때는 모임 중에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섭행(攝行: 대리로 행함) 한다) 무릇 재 안의 물건 출납과 재직(齋直)이. 사환과 집기의 유무에 관한 일은 유사가 주관하고(유사가 아니면 마음대로 재직(齋直)을 불러서 단속하고 벌주는 일을 할 수 없다.) 모든 물건은 모두 장부에 기재하여 교체할 때는 새로 맡는 이에게 장부를 넘겨주고, 무릇 사재(師弟)와 벗들의 강론한 말은 모두 직월이 맡아 기록하여 뒤에 참고할 자료로 삼는다.

(2)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스승과 제자가 모두 관복(官服)으로써 (벼슬이 있으면 사모(紗帽), 단령(團領), 품대(品帶)를 갖추고, 유생은 두건(頭巾), 단령(團領), 조대(條帶)이다.) 문묘(文廟)에 나아가 중문을 열고 묘모(廟貌: 사당)를 드러내어 재배 분향(焚香)하고 (스승이 만일 없으면 학재안에서 연장자가 분향한다.)또 재배한다. (서는 차례는 스승의 앞 줄에 서고 제자가 뒷줄에 서되, 서쪽을 상위로 한다.)

(3) 매일 5경(更)에 일어나 침구를 정돈하고 나이 적은 사람은 비를 들고 방안을 쓸며, 재직을 시켜 뜰을 쓸게 한 다음 모두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의관을 바로 잡고 나서 글을 읽는다.

(4) 아침이 되면 모두 평상복 (입자(笠子)에 직령(直領)이나 또는 관건(冠巾)에 직령(直領)같은 따위인데, 다만 짧은 겹것·직령은 안 입는다.)으로써 묘정(廟廷: 문묘의 뜰)에 가서 중문을 열지 않고 재배만 한다. (스승이 만일 재에 있으면 또한 평상복으로 문묘에 배알한다.) <그리고> 스승이 강당에 있으면 스승 앞에 나아가 배례를 하고, (스승은 일어서지 아니하고 자리에서 구부려 답례만 한다.) 동서로 갈라서서 서로 바라보며 읍례(揖禮)를 한다. (스승이 없으면 문묘에 배례한 뒤 사당 문을 나와 뜰에서 동서로 갈라서서 서로 바라보며 읍을 한다.) ○ 무릇 독서를 할 때는 반드시 팔짱을 끼고 단정히 꿇어앉아 전심치지(專心致志)를 하며 의취(義趣)를 궁구하는 데 힘쓰고, 서로 돌아보며 잡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

(5) 무릇 책상·책· 붓·벼루 같은 물건은 모두 제 자리에 정돈해 두고 행여나 어지럽게 여기저기 흩어 두지 말아야 한다.

(6) 무릇 식사시에는 어른과 젊은이가 나이 차례로 앉고, 음식을 먹는데는 가려먹지 말며 늘 배부르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은병정사(소현서원)(7) 무릇 거처(居處)는 반드시 편안한 자리를 어른에게 사양하고 행여나 편안한 곳을 사리지 말며, 열 살 이상의 연장자이면 드나들 적에 연소자가 반드시 일어선다.

(8) 무릇 걸음걸이는 반드시 점잖고 안존하게 하고 천천히 어른 뒤에 가서 질서를 지키며 행여나 난보(亂步)로 질서를 흐트리지 말아야 한다.

(9) 무릇 언어는 반드시 믿음직스럽고 무게 있게 하고 문자와 예법이 아니면 말하지 말며, 공자가 괴력란신(怪力亂神)1)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법을 삼고, 범씨(范氏: 이름은 충( ) 자는 원장(元長) 호는 익겸(益謙), 송(宋)의 학자)의 칠계(七戒)2)를 마음에 간직하고 눈여겨본다.(칠계는 벽에 써 붙여 둔다.)

(10) 성현의 글이나 성리의 설(設)이 아니면 재 안에서 읽을 수 없으며, (사학(史學)은 읽어도 좋다.) 만약 과거 공부를 하려고 하는 자라면 반드시 다른 곳에 가서 익힌다.

(11) 평상시에도 항상 의복과 의관을 정제(정제)하고 팔짱을 끼고 꿇어 앉아 마치 어른을 대하듯이 하고, 편안하다고 속옷 바람으로 있어서는 안 되며 너무 화려하여 사치한 듯한 옷을 입어서도 안 된다.

(12) 식후에 혹 냇가에 가서 거닐더라도 또한 사물을 관찰하여 이치를 탐구하고 서로 의리를 강론할 것이다. 장난이나 잡담을 해서는 안 된다.

(13) 벗 사이에는 서로 화목하고 공경하기를 힘쓰고, 과실을 서로 바로 잡아주고, 착한 일을 하도록 서로 권하며, 귀함이나 현명함이나, 부유함이나 부형의 권세나 많은 지식을 자부하고서 같은 또래에게 교만을 부려서는 아니 된다. 또 같은 또래들을 기롱하고 능멸하며 서로 희학(戱謔)하여서도 아니 된다.

(14) 글씨를 쓸 때는 반드시 또박또박 반듯하게 쓸 것이며 휘갈겨 쓰지 말며 또 벽이나 창문에다 낙서를 해서도 안 된다.

(15) 몸가짐은 항상 구용(九容)3)으로써 하고, 한쪽 발로 기우듬히 서거나 기대어 자세를 흩트리거나 킬킬대고 웃거나 말을 함부로 함이 없이, 시종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16) 날이 어두운 뒤에는 등불을 밝혀 글을 읽고 밤이 깊은 뒤에야 잔다.

(17) 새벽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동안에 반드시 하는 일이 있어서 마음을 잠시도 게을리 말아야 한다. 혹 독서하며, 정좌(靜坐)하여 본 마음을 간직하며, 의리를 강론하기도 하고, 혹 익힌 바에 대해 질문도 하고, 좀더 자세히 가르쳐 달라고 여쭙기도 하는 등 학문에 관한 일이 아닌 것이 없으니, 여기에 어긋남이 있으면 곧 배우는 자가 아니다.

(18) 이따금 집에 돌아가더라도 절대로 재중에서 하던 습관을 잊지 말고, 어버이를 섬길 때나 사람을 접대할 때나 몸단속을 한 때나, 일을 처리할 때나 본마음을 간직하기에 천리(天理)를 따르고 인욕(人欲)을 제거하기에 힘써야 하며, 행여 학재에 들어와서는 신칙(申飭)하고 재를 나가서는 방탕한다면, 이는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니 용납할 수 없다.

(19) 직월(直月)은 선악을 기록하는 장부를 맡아 기록하되, 제생(諸生)들이 학재에 있을 적과 집에 있을 적의 한 소행을 자세히 살펴서, 만일 언행이 도리에 맞은 자와 학규(學規)를 위반한 자가 있으면 모두 기록하여 매월 초하루에 사장(師長)에게 올려 (무릇 학규를 위반한 자는 직월이 당장(堂長)과 장의(掌議)에게 알려서 함께 고치도록 꾸짖고 만일 고치지 않으면 곧 스승에게 고하고, 고치면 그 기록을 지워버리고 스승에게 고하지 않는다.) 선한 자는 권장을 하고 악한 자는 벌을 주어 가르치는데, 끝내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학재에서 축출한다.

(20) 제생은 비록 모여서 강회(講會)할 때가 아니더라도 매월 모름지기 한 번씩 정사(精舍)에 모여서 (매달 초하루에 반드시 모여야 하고 초하루에 연고가 있으면 늦추되 3·4일이 지나지 아니하여야 하며, 유사는 기일에 앞서 회문(回文)을 내어 두루 알린다.) 의리를 강론하고, 또 직월을 개선한다.

(21) 향중(鄕中)에서 배우기를 원하는 자는 모두 우선 양정재(養正齋)에 있게 한다.

 

< 주 >

1)「논어」술이편(述而篇)에 보인 공자(孔子)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다 [子不語怪力亂神]”라 함을 말하다.

2) (1) 불언조정이해변보차제(不言朝廷利害邊報差除) (2) 불언주현관원장단득실(不言州縣官員長短得失) (3)불언중인소작과악(不言衆人所作過惡) (4) 불언사진관직추시부세(不言仕進官職趨時附勢) (5) 불언재리다소(不言財利多少) (6) 불언음설희만평론연색(不言淫慢評論女色) (7) 불언구멱인물간색주식(不言求覓人物干索酒食)《小學. 外篇 廣敬身》

3) 사람이 취해야 할 9가지 용태(容態), 발은 무겁고 〔足容重〕손은 공손하고 〔手容恭〕눈은단정하고 〔目容端〕입은 다물고 〔口容止〕목소리는 나직나직하고 〔聲容靜〕머리는 곧고〔頭容直〕기상은 엄숙하고 〔氣容肅〕서 있는 자세도 덕스럽고 〔立容德〕얼굴빛은 점잖음 〔色容莊〕을 말한다.《小學紺珠. 性理類. 九容》.《禮記. 玉藻. 栗谷全書. 15卷學校模範》

 

(이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