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계사(同居戒辭)

 

율곡은 어릴 적에 중국 당나라의 아홉 대가 한 집안에 같이 사는 장공예란 사람의 이야기에 감탄해서 형제들이 어버이를 받드는 이륜행실도를 그렸다고 한다. 이러한 이상사회의 꿈을 실현하기위해 율곡은 41세에 해주 석담에 은거하여 청계당을 짓고 일가가 모두 모여 살게 되었는데, 이때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동거계사(同居戒辭: 함께 살며 서로 경계하는 글)을 지어 그대로 실천하였다고 한다.

함께 살아감에 있어 경계할 말을 덧붙이다.

형제는 본래 부모의 한 몸에서 나뉘었으므로 한 몸이나 다름이 없으니, 마땅히 서로 친애하여 너니 나니, 남이니 나니 하는 마음이 조금도 있어서는 안된다.

옛 사람 중에는 9족(族)1)이 한 집에서 함께 살던 일도 있었거늘, 하물며 우리들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맏형마저 진작 작고해버린 고단한 처지가 아닌가. 오직 살아 있는 우리들만은 힘써 서로 우애하여 재산을 공동소유로 해서 살아가고 서로들 떨어지지 않는 것이 옳다.

만약 떨어진다면 살아 있는 낙이 조금도 없을 것이다. 그런 때문에 함께 살아갈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비록 고향을 떠나온 처지라 하더라도 한 집안이 단란하게 모여서 화락으로 세월을 보낸다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이래서 마음을 간직하고 행실을 닦는 방법을 간략하게 기록하니, 매월 초하루에 서로 모여서 읽어 나아가 모두 듣고 알게 하라.

효도는 온갖 행실의 근원인데, 부모들이 이미 작고했으니, 다시 효도해 볼 곳은 없고 다만 제사지내는 일 한가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생기는 물건이 있거든 반드시 간직했다가 제사에 쓸 제수로 삼고 망령되이 다른 데에 쓰지 말 것이다. 또 제사 때를 당하면 반드시 성심을 다하고 몸을 깨끗이 해서 반드시 조상의 넋이 흠향할 수 있기를 기해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이 부모를 섬기는 데는 반드시 옛 성인의 훈계로 마음을 다져서 효도를 극진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 홀로된 형수는 바로 한 집안의 어른이요, 제사를 맡은 주인이시니 그 밑에 딸린 자들은 특별히 공경을 다하여 어머니처럼 대접하는 것이 옳다.

기뻐할 일이나 싫어할 일이 있을 경우에도 치우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아니 되니, 항상 모름지기 화평한 얼굴과 온화한 말씨로 대해야 한다. 타이르거나 나무랄 일이 있을 적에는 절대로 성내는 마음을 품어선 안되고, 밖에서는 결코 헐뜯거나 이러쿵저러쿵 말며, 참소하는 말은 믿지 말아야 한다. 혹시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자가 있을 때에 노복이면 매를 때려서 경계시키고, 첩일 경우엔 엄하게 주의시켜라.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내어보내라.

함께 사는 자들은 개인 재산을 가져서는 안된다. 부득이해서 사사로이 쓸데가 있거든, 또한 집안을 주관하는 한 사람이 나누어 줄 것이나, 각자가 많이 차지할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니, 쓸 만큼만 가져갈 뿐이며 장구한 계책을 도모함이 옳다.

처첩(妻妾) 사이엔, 첩은 공순함을 극진히 하고, 처는 차별 없이 사랑하여서 각기 성심으로 가장의 마음을 어기지 않는다면 어찌 불선한 일이 있겠는가.

집에서 여럿이 모여 앉아서 일을 할 적에 어른이 지나가거든 모름지기 즉시 일어서야 할 것이며, 조심하는 데에는 항상 공순함으로 법칙을 삼는 것이 옳다.

한집안 내에서 숙부는 아버지를 섬기는 예와 같이하고, 종형제는 친형게를 섬기는 예와 같이하여 서로 친애하기를 마치 자기의 몸을 아끼듯 할 것이며, 서로 대할 때 몸가짐은 반드시 공순히 하고 말씨는 반드시 화열하게 하고 안색은 반드시 평온하게 하는 것이 옳다.

비복(婢僕)이 비록 불선한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큰 소리로 망신주거나 꾸짖지 말고 모름지기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고 다잡을 것이며, 그래도 듣지 않을 때에는 집안 어른에게 아뢰어 벌을 줄 것이다. 젊은이는 비록 사사로 부리는 노복이라 하더라도 또한 가벼이 매질하지 말고 모름지기 집안 어른에게 아뢰어야 한다.

한집안 사람들은 서로 화목하기를 힘써야 한다. 마음이 화평하면 집안에 좋은 일만 반드시 모일 것이고, 만약 서로 삐치고 뒤틀면 불길한 기운이 생길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은가.

우리들은 서로 모여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은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남편은 아내에게 모범이 되고 아내는 남편에게 공경하며,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에게 순종하며 처는 첩을 사랑하고 첩은 처에게 공순하며, 젊은이는 성심으로 어른을 섬기고, 어른은 성심으로 젊은이를 사랑하며, 비록 미급한 일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조용히 경계하고 서로 성내지 말 것이다.

그리고 선행을 하는 사람이 있거든 서로 다투어 그를 본받을 것이며, 불평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서로 참아야 할 것이다.

가주(家主 : 호주와 같은 말)의 경우도 비복을 자애(慈愛)하고 비복은 가주를 경애(敬愛)해야 절대 불평한 말이 없고 불평한 기색이 없으며, 온 집안에 항상 화선(和善)한 기운이 돈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각각 이 뜻을 알아서 스스로 힘쓰는 것이 옳다.

 

< 주 >

1) 여기서는 나의 고조(高祖)로부터 현손(玄孫)에 이르기까지의 9대(代)에 걸친 친족을 가리킴. 중국 당(唐) 때 장공예(張公藝)의 9대 친족이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이 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