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방략(六條方略)

 

율곡은 49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기 이틀 전인 정월 14일에 서익(徐益)이 북방으로 순무(巡撫: 여러 곳을 다니면서 백성들을 위무함)의 어명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그에 대한 방략을 알려주고자 중병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앉아 아우 우에게 받아쓰게 하여 남긴 마지막 글이다. 그것은 북방이 한창 시끄러울 때 율곡 자신이 병조판서의 중책을 맡아 나름대로 생각해 온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6개 조목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임금의 인덕을 앞세워 이전에 귀순한 오랑캐들을 충의로써 감동시켜야 한다.

둘째, 임금의 위엄을 떨쳐 복종시키되 듣지 않는 자는 처자나 노약자를 볼모로 하여 투항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북방 변경과 관련된 공무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괴로움을 될 수 있는 대로 덜어 줄 것이며, 현지 사령관인 원수(元帥)를 예우해야 한다.

넷째, 현지 여러 고을의 장수들이 지닌 재략과 무예를 관찰하여 후일 적재적소에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현지 지휘관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사실을 잘 살펴서 서로 융화토록 해야 한다.

여섯째, 변방 장수들의 실정과 그 재능을 잘 살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다 불러주고 나자 극도의 피로로 회생할 수 없게 된 율곡이었지만, 꿈속에서 말하듯 하는 말은 집안일이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모두 나라 일에 관한 것들이었다고 한다.

 

6조의 방략을 서 어사 익에게 주다(갑신년 절필). (六條方略與徐御史 益○甲申筆絶)

 

1. 번호(藩胡)167)를 어루만져 가까이하되 임금님의 인덕을 베풀어 이르기를,

"너희 무리중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있어, 심한 자는 군사를 동원하여 모반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우리의 장사들이 분발하여 일어나 모두들 병력을 다해 너희들 소굴을 말끔히 소탕해 버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임금께서 불쌍하게 여기시어 이르시기를, '저것들이 우리의 번병(藩屛)168)이 된 지도 이미 수백년이라 우리 백성과 다를 것이 없는데, 하루아침에 무식하고도 못난 소소한 무리들이 제스스로 불공한 짓을 하여 옥석(玉石: 옥과 돌, 귀와 천, 시와 비 등을 이르는말)을 분별하지 못하는 생동을 저질렀다고 해서 문득 토벌을 가한다면 비록 한때의 상쾌함을 얻을 수는 있겠으나 실은 백년의 원한을 맺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모름지기 무마(撫摩)하고 진정(鎭定)하여 항복하는 자 처음과 같이 대하고 항복하지 않는 자는 물색(物色: 찾는 것)하여 스스로 달리 다루어야 하니, 이와같이 분변한 뒤에야 정벌하는 것이 옳겠다.'고 하셨다. 너희들은 입에 먹는 것과 몸에 입는 것이며 처자를 편안하게 보존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은 모두 우리 임금님의 인덕이다. 너희들은 장차 무엇으로써 보답하겠는가?

이제 번호가 거의 모두 납항(納降: 항복을 받아드리는 것.) 하였는데도 홀로 궁곤(窮困: 막다른데 처해있는 뜻)한 도적이 된 자는 니호(尼胡)169) 뿐이다. 그리고 니호 한사람 따위로 해서 너희들의 납항이 또한 분명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렇게 지연되어 금년 봄 여름까지도 전쟁이 오히려 그치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반드시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어찌하여 한낱 니호 따위로 해서 이 수백리의 번호를 곤궁하게 한다는 말인가. 니호는 종전에 항복할 계획을 가졌었지만 마음속으로 의심하여 항복하지 않고 나올 듯 물러갈 듯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납항하는 도리이겠는가?

너희들은 명간(明看)170)의 일을 들어보지 못하였는가. 단신으로 그 처자를 거느리고 경원(慶源: 함경북도 북단의 군 이름.)으로 와 항복함에 마침내 죽지 않았고 예와 같은 대우를 받았으니 이야말로 참다운 투항(投降: 몸을 던져 완전히 항복해 오는 것.)이요, 참다운 납항이었다.

니호도 만약 명간처럼 한다면 또한 응당 처음과 같이 대접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아가>싸워 <물러나>지키기를 모름지기 속히 결단하여 우리 병력을 다해서 저것들의 부락을 섬멸시킬 터이니 그렇게 되면 너희들도 또한 마땅히 말을 먹이고 군사를 독려하여 도망하는 도적을 같이 토벌해야 할 것이요, 앉아서 성패만 관망타가 후일의 죄책을 자초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라고 하시오.

이와 같이 타이르고 그래도 안되어 만약에 불살라 소탕할 때는 온성(穩城: 함경북도의 국경에 있는 고을임.) 종성(鍾城: 위와 같음) 회령(會寧: 위와 같음)등지에 연달아 나타나는 추장(酋長)의 처자를 모두 성중에 볼모로 잡아 두되, 대접하기를 극히 후하게 하고, 또 반드시 박절하게 재촉해서 밀어 부치지 말고, 다만 나라를 향한 충의의 정성으로써 감동하게 하여야 하니, 그렇게 하면 저들도 반드시 즐거이 따를 것이오.

 

2. 군사를 남용하여 무도(武道)를 오손(汚損)한다는 것은 영토를 다투고 사람을 죽여 마지 않는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니호는 성을 지닌 번호로써 대대로 국은(國恩)을 받아 직품이 자헌(資憲:정2품의 품계)에 이르러 드디어는 거추(巨酋: 거물 추장)가 되었으니, 일신의 부귀는 물론 토지를 영유하고 백성을 소유함이 추호만한 것도 모두 나라의 은혜입니다.

이러한 오랑캐가 하루아침에 감히 침범하는 난(亂)을 행하여 여러 번 수만의 무리를 동원하여 우리의 변성(邊城: 변방에 있는 성)을 공격 포위하고 우리 변방의 백성을 마구 죽였으니, 만약 이 오랑캐의 종족을 죽여 없애지 않고서는 우리 임금의 위엄을 펴서 영원히 번호를 어루만져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에 대하여 공론하는 사람들은 모두 니호를 토벌하는 거사를 가지고 마치 깊이 들어가는 것처럼 여기니, 낭거서산(狼居胥山)171)장사의 소견이 녹록(碌碌:이렇다할 주견이 없이 구질구질한 것.)함은 진실로 개탄할 만합니다. 비록 그러나 끝내 그만둘 수만은 없는 것이니, 저 니호가 만약 우리의 군사의 위엄을 듣고 무릎으로 기어 원문(轅門: 군영의문)에 이르기를 마치 명간이가 항복하듯이 할 것 같으면 피차가 혹 무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거든 번호의 항복을 받아들이는 일을 이미 마치고 그 처자를 볼모로 잡은 뒤에 번호를 향도(嚮導: 길을 인도하는 자.)로 하여 창을 서로 연해서 일제히 나아가 불의에 덮쳐 습격하면 저것들이 비록 젊은 장정이야 도주하겠지만 노약자는 또한 많이 그대로 얽매어 있을 것입니다. 죽이거나 치는 일을 가하지 말고 노약자와 처자를 모두 몰고 돌아와 후일의 볼모로 삼가 두기로 하고, 그 부락은 즉시 큰 도끼로 낱낱이 쳐 부시어 남은 흔적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대저 이와 같이 하면 저것들이 앞으로 나아가도 의지할 데가 없고 뒤로 물러가도 의거할 데가 없을 것이며, 거기다가 노약자와 처자가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역시 필연코 투항할 계획을 할 것입니다.

 

3. 요즈음 사명(使命: 왕명을 행하는 사자)이 끊어지지 않고 연달아서 남북도(함경도)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니, 별명(別命: 어떤 일을 위하여 특별히 명을 받은 사자)은 공궤(供饋: 숙식이며 기타 사명수행에 소요되는 일체의 지공支供)를 간략하게 하여 여러 고을이 잘 해내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문득 위엄과 노기를 더하지 마시오.

별명을 받은 사신들이 흔히 원수(元帥: 군사를 통솔하는 장수.)와 서로 의합하지 못함이 있으므로 천하의 일이 잘못되는 수가 많고 성공하는 것은 적으니, 이러한 실정을 충분히 헤아려 원수를 대우하되 예양(禮讓)을 극진히 해서 어떤 일이든 모두 온화하게 헤아려 정하고 조금도 어기어 거슬리는 뜻이 없어야 합니다.

 

4. 여러 고을의 장수를 아무개는 대장을 삼을 만하고 아무개는 전장(戰將)을 삼을 만하고 아무개는 수장(守將)을 삼을 만하다든가, 아무개는 재략(才略)은 있지만 무예(武藝)가 부족하고 아무개는 무예는 있지만 재략이 부족하며, 또 누가 재략과 무예를 겸비하고 있는가 하여 하나하나 상세히 통찰하였다가 후일에 재능을 따라 쓸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5. 원수와 곤수(원帥: 병사兵使나 수사水使를 이름)가 서로 화합하지 않는다는 말이 바야흐로 많은데 사실이 그러한지 아닌지 알지 못하겠으니, 모름지기 마음을 여기에 두고 상세히 관찰하여, 혹 완전하게 융화하여 서로 더불어 일을 성취시킬 수 있겠는가를 확인할 것이니, 만일 융화할 수 없다면 어찌 크게 근심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6. 변장(邊將: 변방을 지키고 오랑캐를 정벌하는 장수)은 그 대개가 모두 반드시 겁쟁이만은 아니니, 그 중에는 어찌 의분심이 강하여 오랑캐의 무리를 소탕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변장의 실정을 일일이 자세히 통찰하는 즈음에 그 사람의 재능 여부도 또한 보아야 합니다.

 

◆  내용 설명

6조의 방략을 어사(御史) 서익(徐益)에게 준 것이다. 갑신년의 절필(絶筆)이라고 한 것은 율곡이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1584년(선조 14) 1월 16일의 이틀 전인 14일에 자제들의 간함도 듣지않고 위독한 병중을 무릅쓰고 부추겨 앉아 입으로 부르고 아우 우(瑀)가 받아쓴 마지막 글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임금의 인덕을 펴 감화시키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그러나 국은을 배반하고 침범하여 변성을 점거하고 백성을 살육하는 니호(尼胡)는 항복하여 오지 않으면 철저히 응징할 것을 일렀다. 다음은 순무사는 열읍군민의 민정을 살펴 괴로움이 없도록 할 것과 순무사와 원수며 원수와 병사들 사이의 인화를 도모하여 국사를 그르치지말 것과 장수의 능력을 잘 살펴 두었다가 등용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연보에 의하면 이를 인하여 병세가 더 심하여졌다고 하였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 주 〉

167) 번진의 오랑캐. 조선조시대 북방의 오랑캐들이 자주 괴롭혀 왔으므로 그들을 우리백성 같이 무마하여 나라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변방정책이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168) 울타리나 병풍모양으로 내국을 보호하여 주는 제후 등을 이름.

169) 오랑캐의 추장 이름인 듯하다.

170) 오랑캐의 이름. 반하였다가 항복하여온 자이다.

171) 낭거서산(狼居胥山)은 중국 수원성(綏遠省) 오원현(五原縣) 서북 황하북안에 있음. 혹 낭산이라고도 함.

 

(이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